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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수목원] 광릉숲 회생기원을 위한 고사목 위령제 헌시
  • 작성일2004-09-06
  • 작성자 / 김**
  • 조회6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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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숲 회생기원을 위한 고사목 위령제 헌시
        (2004년 8월 31일 개최)



 - 죽은 전나무의 혼령을 위하여 -



                    박희진



1. 詩人이 드리는 招魂의 말씀



국립수목원 정문에서 멀지 않은
거기 당신의 죽은 몰골 뵈었을 때,
눈물이 왈칵 솟을 뻔했습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셨습니까。



하늘로 높이 솟아오르려던 용이 하루 아침
초췌한 이무기로 바뀐 것 같습니다。
오색 꿈을 펴며 비상하던 봉황이
털 뽑힌 닭으로 추락한 것 같습니다。



아주 여러 해 전 이 광릉 숲길을
지난 적이 있었지요。 하늘을 찌를 듯
죽죽 뻗어오른 전나무들이 즐비해 있는 모습,
신성한 기운이 떠돌고 있었어요。



저절로 탄성이 입술 뚫고 새나왔죠。
눈은 맑아지고 가슴엔 가득 자연에의 외경이。
전나무들은 영원한 생명력을 구가하고 있었어요。
늘 푸른 기백, 향기로운 녹색으로。



이 땅에 태어난 기쁨과 보람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겨드랑에선
날개가 돋아나고 저절로 몸이
두둥실 뜨더군요。 가볍게 공중으로。
아아, 그런데 오늘날 당신이
이렇듯 궁지에 몰린 까닭을
여기 모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들의 잘못임을。



첫째는 이곳 광릉숲 심장부에
길을 낸 게 잘못인데, 그것도
아스팔트 길이 되고 보니
양질의 흙은 다 질식사할 수밖에。



차량들의 폭주로 엄청난 배기 가스
그것이 수목에 좋을 리가 있겠어요?
더러는 저돌하는 미친 차량에
부딪쳐 상처를 입기도 하였을 터。



그동안 죽어서 제거된 전나무가
적지 않다니, 정말 너무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송구스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겠어요。



당신을 포함한 열한 그루 전나무,
백년 이백년의 수령을 헤아리고
높이 24미터, 두 아름이나 되는
귀중한 전나무가 또 베어질 비운에 처했다니。



자연과 문명의 균형과 조화라는
풍류도 정신은 까마득하게 망실하고,
속도와 능률에 환장한 나머지
겨우 10년 앞도 못 보는 아둔함。



졸속행정으로 일을 그르치면
어떻게 돌이키나? 피가 맑아지게
탐욕을 줄여야죠。 평생 남을
이롭게만 하는 수목 정신 배워야죠。



이제 곧 우리와는 幽明을 달리 할
열한 그루의 전나무 보살님들,
다시는 이런 참사 되풀이 안 되도록
혀를 깨물고 맹세하나이다。



받아들이소서 우리의 뉘우침과
사죄의 진실을。비록 보살님들
몸은 사라져도 그 혼령이야
어찌 우리 진정을 마다 하리이까。


 


2. 전나무 혼령이 和答하는 말씀



나, 죽은 전나무의 혼령입니다。
아직 밑뿌리에 잠재해 있었는데
이렇듯 간절한 위령제까지 지내 주시니
홀가분하게 떠나게 될 겁니다。



내가 떠난다고 너무 서운하게
생각지는 마십시오。 천수를 누리지 못한
유감은 있지만, 설사 누린대도
언젠가는 떠납니다。 생자 필멸이니까요。



하지만 영영 떠나는 건 아닙니다。
나는 다시 여러분 곁으로 되돌아 옵니다。
흙이나 바람이나 이슬로 말입니다。
생명은 무궁무진한 것이예요。



인간 또한 자연에서 나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일부거늘,
우리는 기실 ‘자연’이라는 생명을 공유하는
형제간인 것입니다。 대우주 가족이죠。



천지만물 중 단독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보이는 안 보이는
인연의 끈으로 물샐틈없이 엮어져 있는 것이
생명의 실상예요。 서로 겸허히
상부상조해야 공생공영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 보호, 자연은 인간 보호」
이런 더없는 훌륭한 표어가
인간 사회에 있음을 압니다。



그것이 왜 잘 지켜지지 않는지요。
인간의 자만과 탐욕 때문 아닐까요。
자연과 문명의 균형과 조화라는
풍류도 명제를 깨서는 안 됩니다。



개발의 미명 아래 마구 자행되는
자연파괴, 자연오염, 그것이 다름아닌
인간파괴요 인간오염임을 명심하십시오。
지구는 인류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문명의 무절제한 일방적 팽창으로
인류는 지금 너무 분수를 모르고 있습니다。
눈은 멀었고 혈액은 형편없이 혼탁해졌는데도
계속 탐욕은 늘어만 가니 염려스럽군요。



만물의 영장답게 우주의 영광답게
이젠 정신을 차릴 때 입니다。
제가 좀 지나친 말씀을 드렸다면
아무쪼록 너그럽게 용서하십시오。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어 있어요。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날지는 모르지만
그 때 우리는 너무 반가워서 포옹할거예요。
바람이 바람과 만나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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