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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가 국립수목원에 준 딜레마(환경일보, 7.14)
  • 작성일2006-07-13
  • 작성자 / 김**
  • 조회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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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가 국립수목원에 준 딜레마


권은오 국립수목원 원장


국립수목원을 얘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것이 광릉 숲이다. lsquo;인간과 생물종이 공유하는 생태계 확립rsquo;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국립수목원은 산림 생물의 조사middot;분류middot;동정 및 정보를 관리하고 유용식물 탐색과 수집 보전, 자원화의 선도, 식물 및 자연환경의 대국민 홍보 및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광릉 숲의 안정적인 보전과 관리라는 중요한 임무도 갖고 있다.

광릉 숲은 1468년 세조대왕의 왕릉(광릉)을 지키는 숲(능림)으로 보호되기 시작한 이래 500년 이상 자연 상태로 보전된 숲이다. 아름답고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숲이자 작은 면적에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이 살고 있어 한국 최고의 산림생물 보물창고 및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숲으로도 불린다.

식물의 경우 우리나라 고유의 자생식물 1000여 종을 포함한 2900여 종, 동물의 경우 2800여 종이 서식하는 보고이다. 출근해서 수목원을 돌아볼 때 계곡 근처에서 자주 만나는 꿩middot;고라니middot;다람쥐middot;청설모 모습과 딱따구리의 나무 파는 소리가 정겨운 곳이다. 특히 광릉 숲의 ha당 임목 축적은 232㎥인데 흑림으로 유명한 세계 최고인 독일의 277㎥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선진국 수준이다.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니 특히 봄철에 버섯middot;산나물 등 임산물을 채취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황금어장(?)으로 보이는 것 같다. 광릉 숲의 생태환경과 생물유전자원 보호를 위해 철망도 설치돼 있고 지속적인 단속도 실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단 입산하거나 산나물이나 약용식물 등 불법 채취자가 단속되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수목원장으로 부임한 이래 산불 방지 및 생물자원 불법 채취 예방을 위해 lsquo;광릉숲 보호 총력전rsquo;을 전개했다. 광릉 숲 인근의 남양주middot;포천middot;의정부 주민 대표와 간담회를 개최하고, 인근 유명 사찰인 봉선사를 직접 방문해 광릉 숲 보호 취지를 설명한 후 도움을 요청해 동참 약속을 받았다. 유기적인 협조 체계가 구축된 셈이다. 주민들이 건의한 등짐용 산불진화 펌프도 구입해 나눠줬다. 산림경찰 및 산림보호감시원과 공익근무요원을 증원 배치해 사전 예방 위주로 취약 시간대인 새벽녘에 중점 순찰하고 민간단체, 지역주민, 인근사찰 등에서도 순찰 및 감시활동을 도왔다. 이와 병행해 대국민 홍보 및 계도 활동도 했다.

lsquo;광릉숲 보호 총력전rsquo;을 전개한 결과 좋은 성과를 거뒀다. 무단 입산자, 산나물 등 임산물 불법 채취자, 야생 멧돼지middot;개구리middot;뱀을 불법으로 포획한 사람들이 단속됐다. 5월까지 단속 실적을 비교해보면 지난해는 9건에 18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 것에 비해 올해는 30건에 6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포획한 내용물을 보고 놀란 적도 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뱀이나 개구리를 포획할 수 있는지 불법 포획자들의 기술(?)에 놀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광릉 숲의 생물상이 이렇게 다양하고 풍부한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는 뿌듯하게도 느꼈다.

며칠 전의 일이다. 수목원 전시원 관계관이 놀란 표정으로 ldquo;봄철에 튤립, 크로커스, 히아신스 등을 식재한 곳에 땅이 파헤쳐져 있고 줄기는 부러지고 구근이 없어진 것을 보니 멧돼지가 나타나서 피해를 준 것임에 틀림없다rdquo;고 보고했다. 현장에 가보니 피해가 상당했다. 피해 현장을 보자 아침 순찰 길에 계곡에 가끔 나타나 정겹다는 느낌을 주던 멧돼지가 갑자기 수목원의 적(?)이자 괘씸한 녀석으로 느껴진다. 숲에는 요즘 산딸기middot;오디 등 먹잇감도 풍부할 터인데 그런 것은 먹지 않고 전시원까지 내려와 아름답게 가꾼 전시원을 다 망쳐놓고 먹이를 찾았다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날 저녁은 관계관이 불침번을 서서 멧돼지 출현을 기다렸으나 사람 냄새를 맡아서인지 나타나지 않다가 다음날 근무를 하지 않자 다시 나타나 피해를 남겼다. 이제는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의견을 수렴해 봤지만 당장 적절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방치하면 계속 피해를 줄 터인데 산림 생물을 지키는 수목원에서 멧돼지를 포획할 수도 없고, 또 적절한 포획 방법도 없다. 수목원에 멧돼지가 던져준 딜레마에 빠져버린 것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딜레마를 해결할 수단을 찾았다. 멧돼지가 들어오지 못하게 울타리를 치자는 것이다. 그 쉬운 방법을 왜 빨리 생각하지 못했을까.

수목원에는 살아 있는 화석이자 일명 lsquo;공룡 소나무rsquo;로 알려진 울래미 소나무, 약용식물원, 그리고 식용식물원 3곳에 울타리가 있다. 울래미 소나무는 관람객으로부터 약용middot;식용식물원은 관람객과 야생동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울타리를 치면 미관상 다소 좋지 않지만 멧돼지도 살리고 구근류도 보호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의 효과다. 멧돼지는 땅파기와 냄새 맡기에는 선수이지만 점프의 선수는 아니기 때문이다. 해결책이 나오자 괘씸하고 적으로까지 보였던 멧돼지가 다시 다정한 친구처럼 느껴진다. 크게 외치고 싶다. ldquo;어디서든 마음껏 뛰며 놀아라. 멧돼지야, 광릉 숲 이곳은 너와 모든 친구들의 삶의 터전이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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