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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트는 봄이 주는 삶의 교훈
  • 작성일2005-05-09
  • 작성자 /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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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시간을 내어 연구실을 싸고 있는 광릉 숲길을 거닐었다. 그 부드러운 봄의 기운이 햇살을 타고 숲길에 스며든다. 이미 복수초는 양지바른 산비탈의 길목에 자리잡고 반질반질 윤기나는 노란빛 꽃송이들을 터트렸다.
얼었던 땅들은 녹아 푸슬푸슬하기 시작하고 그 속에서 삐죽이 움터 오르는 새싹들이 생명들이 눈에, 마음에 가득 들어온다. 온갖 생명들이 움트고 이러저러한 꽃과 잎들이 터져 나오는 봄은, 언제나 마음을 붕붕 띄워내는 그런 설렘이었는데, 이 봄의 느낌은 조금 특별하다. 잔잔하지만 뭉클하니 마음을 움직인다. 봄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따뜻함을 가슴에 차곡차곡 채워가는 그런 느낌이다. 세상에 어떤 것이 더 편안하고 부드러울 수 있을까!
봄의 기운이 부드럽다는 것을 말이 아닌 몸과 마음으로 느낀 것도 이봄의 새로운 체험이었다. 우리 곁에 있는 생명의 움직임을 얼마만큼은 현상에서 존재의 의미로 바라볼 수 있게 된 나이가 되었기 때문인 듯도 하다.
봄이 되어 땅 위로 올라오는 식물들의 연두빛 모습뿐 아니라, 그러기 위해 지난겨울 땅속에서 겪어내었을 인고의 어려움이 함께 보이기 시작했다.
냉이, 꽃다지, 제비꽃, 앉은부채, 회리바람꽃, 얼레지hellip;. 이름만 들어도 기분 좋아지는 그 숱한 봄꽃들의 곱고 여린모습 속에는, 숲의 수많은 경쟁 식물들이 잠깨기 전에 꽃을 피워내기 위해 이미 지난 가을부터 만반의 준비를 하고 모진 겨울을 견뎌낸 인내와 부지런함이 숨어 있음을 이제 알게된 것이다.
흔히 땅위로 보이는 식물의 크기만큼 땅속에 뿌리가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남달리 빨리 봄을 여는 이 꽃들은 그보다 훨씬 더 깊고 튼실한 뿌리를 땅속에 가지고 있다. 새봄을 맞이하기 위해 이겨낸 어려움의 크기만큼. 아무것도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바위틈에도 뿌리를 내리고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것도 그 시작은 섬세한 뿌리 끝이 어딘가에 있는 아주 작은 틈새를 파고 들어가는 일이었고 조금씩 조금씩 그 뿌리가 길고 굵어지면서 아무도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낸다.
연일 독도 문제로 들썩거린다. 한번도 가보진 못했지만, 우리들 누구나 그러하듯 독도는 마음에 살아 있다. 내 가슴에 가장 깊이 남은 독도의 모습은, 수려한 경관도 아니고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괭이갈매기의 군무도 아닌, 바다를 보고 바위틈에 자리잡은 해국(海菊) 사진 한장이다.
아무도 심지 않았을, 아니 못했을 그 자리에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아주아주 오래전부터 우리꽃 해국은 여느 그 섬세한 뿌리로 자리를 잡고, 유난스러웠을 바닷바람을 맞으며 살아가며 피워내는 연보랏빛 꽃송이들은, 그리고 그 잎에 생겨난 보송보송한 솜털들은 그 어떤 구호보다도 강렬한 외침을 주고 있음을 느낀다. 그 모습이 장하다 못해 경외감을 갖게 한다.
아무 말없이 말하고 있는 식물이 어디 해국뿐이랴. 섬장대, 털머위 같은 풀들은 그 땅이 울릉도와 연이은 우리 섬임을, 쇠비름과 쑥, 강아지풀 같은 것들은 독도에서 우리들이 드나들고 있음을 그존재 자체로 말해주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진정한 가치와 힘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일순간 화려하게 살다가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스타들도, 좋은 머리를 잘 써서 불려나간 부동산으로 많은 재산을 축적한 부자도, 욕심을 대의로 가려 앞에서 외치는 사람들도 아니고, 바로 보이는 것은 지극히 사소해도 진정을 가지고 하나하나 이어가는 우리 민초들의 삶 말이다. 비바람을 맞고 있는 말 없는 독도의 해국처럼, 자신의 몇배가 넘는 뿌리를 내려 겨울을 극복하고 피어나는 봄 숲의 앉은 부채처럼.
이제 기꺼이 작은 풀처럼 차근차근 하나하나 맡은 자리에서 하찮을지도 모르는 일을 해나가는 내 삶이 부끄럽지 않다. 그 일이 쌓여 나가 하나의 밀알이, 혹은 터받이가 되어 새로운 희망을 품어갈 것을 의심하지 않기에 말이다.
새봄에 지극히 부드러운 봄 햇살이, 그리고 세월이 가르쳐준 이야기이다.
nbsp;nbsp; < 문화일보/이유미 국립수목원 생물표본과 연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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