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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산들의 정기로 가득찬 내 마음
  • 입상자명 : 정 희 원 경기 안산 성포중 3-14
  • 입상회차 : 4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엄마, 저 산 좀 봐요. 희아야, 너도 보이지?”

“….”

내 말에 깜짝 놀라 잠이 깬 엄마와 동생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의 웅장한 모습에 넋을 놓고 있었다. 안산에서 이곳 정선까지 버스를 타고 5시간 정도 달려오다보니 몸도 지치고 어지간히 지루했던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산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병풍처럼 둘러싼 산들은 시골버스의 지친 듯한 터덜거림을 말없이 안아주고 있었다.

“엄마, 저 산은 정말 높다. 저런 곳에는 호랑이가 살 것도 같은데?”

“바보야, 우리나라에 호岵隔?어디 있냐? 이미 사라진 지가 오래라는데.”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동생의 어이없는 말에 나는 핀잔을 주었다.

“얘, 너무 그러지 말아라. 누가 아니? 저렇게 깊고 험한 산 속에 호랑이가 살고 있을지….”

터미널에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할말도 잊은 채 끝없이 펼쳐지는 산을 보고 있었다.

지난 여름, 우리는 해마다 찾아가던 바다를 대신해 이번에는 산을 찾기로 했다. 10여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하지만 외국어 고등학교를 목표로 하고 있는 나는 3학년 여름방학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공부하느라 여행은커녕 가까운 수영장도 꿈도 꾸지 못했다. 방학을 했어도 아침 10시에 집을 나섰다가 밤 12시가 되어서야 집에 오고, 토요일도 없고 일요일도 없이 지내야 하는 생활을 하다보니 자꾸만 버거워지고….

“머리도 식힐 겸 이번 주말에는 아빠가 계시는 정선에 다녀오자. 그곳에 가면 공기가 맑고 깨끗해서 정신이 맑아질거야.”

엄마의 말씀을 듣는 순간부터 나는 갑자기 산에 가고 싶어 마음이 바빠졌다. 그래도 책상 앞을 떠난다는 불안감에 공부해야 할 책들을 가방에 넣고나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내내 마음이 불편했었는데 막상 산을 마주 대하고나니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오너라. 오느라고 피곤하겠구나.”

“아빠.”

우리는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시는 아빠를 따라 숙소에 가서 짐을 풀어놓고 간단한 요기를 하였다. 아빠는 일 때문에 다시 가셨고 우리는 숙소 뒤쪽에 자리잡고 있는 산으로 들어갔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로 후끈거리는 아스팔트를 벗어나 산 속으로 들어가자 모든 것이 멈추어 버린 것 같은 정적이 발길을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와! 이 나무는 몇백 년은 된 것 같다. 끝이 안 보여.”

“정말 너무 조용하다, 시원하고. 얼마 만이야. 이렇게 홀가분한 마음이 드는 게….”

발 밑으로 느껴지는 촉촉함에 걸음걸이가 가벼워졌고, 코끝으로 와 닿는 상쾌한 내음은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솟아오른 나무들, 그 사이로 보이는 조각난 푸른 하늘, 비스듬히 비껴 내리는 투명한 햇살, 그 햇살에 반짝이는 이름모를 풀들….

“엄마, 이 산에도 산신령님이 살고 있을까?”

“얘는 또 어린아이 같은 소리야. 이 세상에 산신령이 어디 있니?”

내 말에 동생은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금세 뾰로통해졌다.

“언니는 왜 내가 말하는 것마다 아니라고 하는거야? 그리고 언니가 확실하게 본 것도 아닌데 왜 무조건 없다고 하는거야. 호랑이도 그렇고 산신령도 그렇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무조건 없는 것은 아니잖아. 언니하고 나하고 초등학교 때 읽었던 「설문대 할망」이라는 책 속에도 산신령이 나오잖아.”

“야, 그건 그렇고 아무리 그래도….”

“희원아, 그건 희아 말이 맞다. 요즘처럼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게 어리석을 수도 있지.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무조건 없는 것은 아니야. 엄마는 산에 산신령이 있다고 생각한단다. 산에 사는 모든 것들을 지키고 보호해 주는 일을 하고 계실거야. 그리고 산에는 정기가 있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산신령이 있다는 증거야. 그 정기를 받아 산에 살고 있는 모든 것들이 잘 자라는 거란다. 그러니까 산을 찾는 우리들도 좋은 마음을 갖고 찾아야 하는 거야. 엄마는 네가 공부를 잘 해서 외국어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유학도 다녀와서 뜻하는 대로 외교관이 되는 것도 좋지만 주위를 둘러볼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구나.”

엄마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그 동안 내가 공부한다는 이유로 소중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공부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나보다 좀 못해 보이면 우습게 여기고 1등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긴장감으로 누구나 경쟁자로 생각해 왔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동생과 같이 읽었던 「설문대 할망」의 모습이 떠올랐다.

제주도의 한라산에 살고 있는 설문대 할망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산에 오르지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읽고 우리는 앞으로 약속을 잘 지키자고 맹세까지 했었던 나는 자꾸 웃음이 나왔다. 시험 때만 되면 성적 때문에 엄마에게 혼이 나기는 하지만 그때 그대로의 마음을 갖고 있는 동생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요, 엄마 말씀이 맞아요. 희아야, 네 말이 맞아. 이 산에도 틀림없이 산신령님이 살고 계실거야. 신령님! 저 여기 왔습니다. 산신령님이 굽어 살펴주셔서 제가 외국어 고등학교에 꼭 입학할 수 있게 해주세요.”

“어머머!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면 어떻게 하니? 산신령님이 깜짝 놀라셨겠다.”

“언닌 얌체야. 언니 소원만 비냐? 나도 빌어야지.”

우리는 산신령님이 소원을 들어줄 것처럼 한동안 각자의 소원을 빌었다. 소원을 비는 내 마음 속은 어느새 산들의 정기로 가득차 있었다.

푸르른 울림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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