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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나는 칡이다
  • 입상자명 : 이경수
  • 입상회차 : 17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우리의 오랜 적은 인간이다. 수많은 인간은 우리 칡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고 또 부드러운 잎으로 소를 키워왔다. 어떤 인간은 칡을 짧게 토막 내는 것도 모자라 갈기갈기 찢어 작물의 묶음 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더욱 무서운 건 우리 칡을 몰살 시키려고 그러는지 뿌리까지 캐서 쓰디 쓴 즙을 짜 마시는 잔인한 인간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름 꽤나 있는 전국의 유원지에선 당당하게 칡 즙을 짜서 팔고 있는 인간이 있다. 살아 있는 곰의 쓸개에 빨대를 꼽아 놓고 즙을 짜내는 것만 불쌍한 것이 아니다. 눈이 있으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방법으로 칡즙을 짜내는지 그 과정을 한 번씩 봐라. 무슨 틀에 넣고 납작하게 눌러가며 엑기스를 짜내는데....... 정말 소름이 끼치도록 끔찍하다. 인간은 농사를 지을 때 곡물을 단단히 고정 시키거나 묶는데 우리 칡을 지난 수천 년 동안 무단으로 사용해 왔다. 그런데 우리 칡에게는 아무런 고마움을 못 느끼고 있다.

그런 양심조차 없는 인간들은 함께 살아가던 사람이 죽으면 무섭다고 호들갑을 떤다. 칡도 우리의 동료가 죽어 나자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 똑같이 무섭고 두렵다. 우리를 그렇게 짓밟아 가며 사용 했으면 좀 보이지 않은 곳에 두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인간은 들판에서 칡으로 곡물 단을 묶어 떠벌려 놓은 채 햇볕에 말리는 이상한 취미가 있다. 이 얼마나 잔인한 행동인가. 불쌍하게 죽은 칡을 두 번이나 말려서 죽이려는 수작인 것이다. 게다가 소라는 놈은 또 얼마나 얄미운지 자기가 먹다 남은 칡의 줄기를 네발로 잔인하게 잘근잘근 짓이기더라. 힘이나 쓰는 소 주재에 칡이 맛없다는 표현을 그딴 식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또 다른 칡을 한 아름 끊어다 던져 준다. 더욱 분한 건 인간들은 그런 불쌍한 칡을 나중엔 소똥과 같이 비벼서 수북이 쌓인 거름더미 위로 아무렇게나 '휙!' 던져 버린다. 이 얼마나 더러운 칡의 죽음인가.

더 잔인한 인간은 날이 시퍼렇게 선 작두에다 대고 짧게 마구 자르기도 한다. 그런 뒤 가마솥에다 우리를 '푹! 푹!' 삶아서 소죽통에 부어 주더라. 이 또한 얼마나 잔인한 행위 인가. 그나마 천만 다행스러운 일은 겨울에는 소가 먹는 종류에서 칡이 거의 비켜 나와 있다는 것이다. 이건 우리 칡에게 거의 천운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칡이 소의 겨울 먹이에 포함 되어 있었다면 우리 종족이 지금껏 이렇게 생존해 있기나 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는 오래 도록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다. 우리의 칡은 그동안 못살게 굴었던 인간에게 복수하기 위해 분노의 이를 갈며 끈질긴 목숨을 겨우 연명해 왔다. 굶주린 인간들에 의해 뿌리마저 마구 뽑혀 나가고 소의 먹이로 허리가 '싹둑!' 잘려 나가도 우리는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서로의 몸을 바쳐 가며 울분을 참고 또 참아 왔던 것이다. 그 모든 악행은 두 발로 서서 뒤뚱 거리며 걸어 다니는 인간이 주도 하였다.

"그렇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소도 몹시 나쁜 놈이다. 우리와 무슨 원수가 졌다고 그 많은 식물 중에서 왜 하필 칡만 그렇게 먹어 치운단 말인가. 정말 소처럼 많이도 처먹더라. 소가 아무리 칡을 좋아 한다고 해도 그렇지 그걸 꼬박꼬박 끊어다 바치는 인간은 더 나쁜 놈이다. 한 놈이 들판으로 나왔다 하면 무조건 지게로 한 짐을 채워야 비로소 그 악행을 멈추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인접한 칡의 허리는 사정없이 잘려 나가 주변은 온통 쑥대밭으로 변하곤 했다. 그 전까지는 우리의 그늘에서 간신히 숨만 쉬며 겨우 살아가던 잡초는 그 틈에 새로운 삶을 얻은 것처럼 맹렬한 재기의 발판을 만든다. 천만 다행이라면 인간들은 칡의 부드러운 잎을 전혀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맺어 놓은 잎과 씨앗마저 저런 인간들이 처먹었다면 우리 칡의 삶이 얼마나 더 비참해 졌을까 싶다. 인간들은 특이한 놈이라 자기들에게 필요하면 뭐든지 뿌리째 캐어 그들 집안에서 재배를 하더라.

그러나 유일하게 인간들이 먹을 줄(뿌리) 알면서도 재배 하지 않는 게 딱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우리 칡이다. 우리 칡을 뿌리째 데려가 어디든 딱 한번 심어 놓기만 한다면 우리는 단 3개월 만에 그 집안을 온통 칡밭으로 만들어 버릴 자신이 있다. 그러나 약아 빠진 인간은 우리의 속내를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지 그들 가까운 곳엔 진입을 허용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우리가 집 근처나 밭에서 고개를 좀 쳐들고 침범을 할라치면 줄기를 가차 없이 낫으로 싹둑 잘라 버리곤 한다. 소도 처먹고 인간이 우리의 푸른 잎을 맛있게 먹었다면 아마도 우리 칡은 요즘처럼 이렇게 들판에서 빠른 번식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농촌의 가가호호 마다 소라는 천적을 한두 마리씩은 꼭 기르고 있었다. 인간들이 밭을 자력으로 갈아엎을 힘이 없기 때문에 그 힘을 빌리기 위해 소가 좋아 하며 잘 먹는 칡을 인간은 끈임 없이 끊어다 바치곤 했었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농촌에서 소가 하나 둘씩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칡은 무척 기쁘기 그지없다. 소가 사라질수록 인간들이 칡을 찾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수난도 그만큼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최근 농촌에 한두 마리씩 남아 있는 소도 칡이나 바랭이 풀 대신 인공 사료를 먹고 있다. 예전의 소처럼 힘쓰는 일을 하지 않다 보니 이젠 소도 사람에게 찬밥 신세를 못 면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소를 힘들게 부려 먹고도 미안 하지가 않은지 소가 늙거나 병이 들어서 죽게 되어도 그 고기마저 삶아서 먹곤 한다. 뭐든 '푹! 푹!' 삶는 걸 정말 좋아 하는 인간들은 성미도 유별나 자기들 입에 달면 삼키고 쓰면 곧바로 내뱉고 만다는 걸 소를 통해서 다시 확인 되었다. 요즘은 밭도 한번 못 갈아 본 소가 많다는 게 그 증거이다. 불쌍한 소 같으니라고....... 쟁기가 무엇인지 알기나 할런지. 최근 들어서 인간들도 우리의 칡을 농사용 묶음 끈으로는 거의 사용을 않고 있다.
그러고 보니 벌써 꽤 여러 해가 되었다. 언제는 칡만큼 좋은 묶음 끈이 없다면서 모질게도 끊어다가 갈기갈기 찢어서 쓰더니만 이젠 듣도 보도 못한 나일론 끈이 더 좋다며 뒤도 한번 돌아보질 않는다. 이제 다시는 우리 칡이 인간에 의해 쑥대밭으로 변하는 살상을 보진 않아 시원스럽지만, 인간의 그 차갑고 매몰찬 시선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치를 떨고 있다. 인간은 우리 칡의 삶이 왜 그리도 못 마땅하단 말인가. 이제 우리 칡은 인간에게 복수를 선언한다. 이제 그 처절한 복수를 위해 우리 칡은 인간에게 공격을 할 때가 왔다. 오랜 침묵을 이어왔던 칡은 전국 방방곡곡에 걸쳐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특히 들판과 공터와 도로변엔 벌써 분노로 가득 찬 칡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시설로 소리 없이 진격 하는 중이다. 농촌에 있는 국도와 고속도로변의 울타리는 이미 우리 칡들이 장악을 한지 오래다. 봄엔 울타리 근처의 개나리나 장미에게 잠시 자리를 내어 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름이면 거의 모든 시설을 우리 칡들이 더 푸른 세상으로 뒤덮어 버린다. 그러나 우리 칡에도 힘든 고난이 없는 건 아니다. 인간들은 우리가 도로변의 울타리를 힘겹게 타고 넘어 갈 때쯤 예초기라는 놈을 마구 들이 대며 공격을 감행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 칡은 좌절 하지 않는다. 우리의 허리가 잘려 나갔던 때가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잖은가. 예초기에 절딴 나나 시커먼 무쇠 낫에 베어져서 죽어 나가나 달라질게 뭐 있겠는가. 다만 인간들은 이제 손에서 낫을 놓은 지가 꽤 오래 되었다. 그러므로 제 아무리 예초기의 성능이 낫보다는 띄어 나다 해도 그 옛날 수많은 인간의 끔찍한 낫질에 비할까 싶다. 공포의 예초기는 일 년에 단 한차례 지나가면 끝이지만 예전 인간들의 낫질은 전국에서 거의 매일 밤낮으로 이루어졌질 않은가. 그러나 인간들이 손에서 낫을 놓은 이상 우리 칡의 세상이 점점 도래해 오는 중이다.

요즘 인간은 게을러 터져서 무더운 여름 단 한 번만 도로 주변의 잡초를 베고는 만다. 그땐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칡도 상당한 피해를 입지만 다른 곳에선 훨씬 더 잘 살아 가고 있기 때문에 달리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지금도 전국 곳곳의 전봇대를 타고 더 높이 올라가 인간이 중하게 여기는 시설물에 나쁜 영향을 끼치기 위해 우리 칡은 기를 쓰고 있는 중이다. 이미 키가 낮은 전신주는 꽤 여러 곳에서 칡이 장악하여 화재로 인한 정전이 됐다는 소식이 인간들의 판때기(tv뉴스)에서 종종 비치고 있다. 이제 멀지 않아 더 많은 곳에서 단전이 되어 공장이 멈추고 전기 합선으로 산불이 속출 하는 곳이 나오리라 확신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미 예전의 부지런을 떨던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돈을 최고로 알고 돈만 쫓으며 살아가려고 한다. 더구나 돈이 안 되면 그 어떤 것도 하려 들지 않는다. "나의 동지 칡이여! 우리 조상의 복수를 위해 인간 세상을 더욱 푸르게 뒤 덮는 그날까지 계속 앞으로 전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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