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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한국 숲의 재발견
  • 입상자명 : 복일경
  • 입상회차 : 17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십여 년 만에 한국의 산을 찾았다. 한국에 도착하기에 앞서 예약해 두었던 펜션은 강원도 평창의 산자락에 있었다. 서울에서 두 시간 반이면 이런 숲에 올 수 있다는 게 감개무량했다. 산자락은 서울을 벗어나면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창밖으로 다가오는 오월의 산은 파란 하늘 밑에서 사라졌다가 다가오기를 반복하며 푸르름을 뽐내고 있었다. 매일 보는 사람은 모른다. 우리나라의 산이 얼마나 아름답고 우아한지. 그리고 울창한 숲이 뿜어내는 공기가 얼마나 신선하고 맛있는지. 나 역시 알지 못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는.
십 년 넘게 살았던 미국의 샌디에이고는 공기 좋고 날씨 좋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제일 더운 여름에도 습도가 낮아서 나무 밑에만 있으면 금세 한기가 느껴졌고, 한겨울에도 섭씨 17도를 웃돌았다. 이처럼 쾌적한 날씨와 깨끗한 주변 환경 때문에 샌디에이고는 수년간 은퇴 후 미국인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 상위에 랭크되곤 했다. 하지만 주택가의 잘 가꿔진 공원과 산책로를 걸으면서도 나는 늘 허전함을 느꼈다. 스프링클러가 품어내는 시원한 물줄기도 결코 나의 갈증을 풀어주지 못했다.
오랫동안 알 수 없었던 그 허전함의 정체를 알게 된 건 한국에 있는 친구가 보내온 엽서 덕분이었다. 평범한 안부를 묻는 친구의 엽서 뒷면엔 설악산의 가을 풍경이 담겨있었다. 알록달록한 설악의 단풍과 시원한 물줄기는 미국의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엽서 속 무언가가 나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촉촉함이었다. 땅속 깊은 곳에서 빨아올린 수분이 줄기 속 물관을 따라 이동하여 나뭇잎 사이로 빠져나오는 물의 입자들. 그로 인해 한국의 산과 숲은 늘 축축한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사막처럼 메마른 땅에서 오직 스프링클러 하나로 연명하는 샌디에이고의 나물들은 물기를 내뿜기는커녕 오히려 대기 속 수분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상사병에 시달렸다. 가족도 친구도 아닌, 촉촉함에 대한 갈증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단 하루, 아니 한 시간 만이라도 사진 속 그 길을 걸을 수 있다면 원이 없을 것 같았다. 바람 사이로, 나뭇잎 사이로 전해지는 촉촉함을 느끼고픈 강렬한 욕망에 나는 입맛을 잃었고 수면 부족에 시달렸으며 우울증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어처구니없는 나의 상사병을 눈치챈 남편이 처방을 내놓았다. 샌디에이고 주변의 산과 숲을 다 뒤진 남편은 팔로마 마운틴 천문대 근처에 오두막을 예약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집을 나선 우리 부부는 어린 두 딸과 함께 천문대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이내 산길로 접어들었고, 그 길이 끝나는 숲속 한가운데 오두막 한 채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고즈넉한 숲속 풍경에 빠져든 우리 가족은 오두막 근처에서 도토리도 줍고, 목장의 말들에게 풀을 먹이며 가을의 오후를 만끽했다. 그리고 오두막에서 간단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거실 벽난로 앞에 놓인 큼직한 욕조에서 느긋하게 목욕을 즐기며 붉은 석양을 감상했다. 거기까진 완벽했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자 산은 어두운 속내를 드러냈다. 애당초 오두막을 둘러싼 숲은 내가 상상했던 숲과 거리가 멀었다. 건초더미를 연상케 하는 숲 어디에도 촉촉함이라곤 없었다. 메마른 땅에서 자라나는 풀과 나무들은 바짝 말라 있었고, 그 사이를 오가는 바람에선 비릿한 먼지 내음이 풍겨왔다. 낮에는 눈치채지 못했던 대기의 건조함은 밤이 되자 오두막 안의 모든 물기를 빨아들였고, 급기야 피부 속 물기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죄어오는 건조함에 젖은 수건들을 내 널고 곳곳에 물그릇을 놓아두었지만 우리는 몇 번이나 잠에서 깨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야 했다. 어렵사리 눈을 뜬 가족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입술은 모두 터져 있었고, 손과 발을 쩍쩍 갈라져 있었으며 볼은 허옇게 일어나 있었다. 동이 트자마자 오두막을 떠나는 우리 모습은 패잔병을 연상시켰다. 목이 아프다고 칭얼대는 아이들의 머리카락에 뽀얀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 뒤로 우리 가족은 절대로 산을 찾지 않았다. 그렇게 산이란 단어는 촉촉함이 아닌 처절한 건조함의 대명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촉촉함의 갈증은 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으며 되살아났다. 태어나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게 되는 아이들에게 한국의 이런저런 사진들을 보여주며 나는 꿈에 부풀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마주한 한국의 산은 기대 이상이었다. 평창의 아담한 펜션에 짐을 푼 우리 가족은 삼겹살로 배를 채우고 잠이 들었다. 멀리서 뻐꾸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랜만에 단잠을 자고 일어난 아이들이 방문을 열자 뿌연 안개가 비집고 들어왔다. 축축한 공기가 피부로 스며들었다. 잠옷 바람으로 나선 발코니에서 나는 그토록 갈망했던 촉촉함을 마주했다. 대체 얼마 만에 느껴보는 촉촉함이던가. 대충 옷을 꿰입은 나와 가족은 펜션 뒤로 이어진 숲으로 향했다.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숲은 어둡고 축축했다. 조심조심 개울을 따라 걸으니 파란 제비꽃과 노란 황국이 이슬을 머금은 채 모여 있었다. 하얀 들꽃 사이로 벌들이 모여들었고, 작은 무당벌레가 그 위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 뒤편 떡갈나무에선 이슬이 후두두 떨어졌고, 놀란 꾀꼬리 한 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청량함이 묻어나는 자작나무들 틈에서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방이라도 요정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그 숲에서 우리는 눈을 감고 깊은숨을 들이켰다. 오랜만에 촉촉해진 나의 폐가 먼지 알갱이를 토해내었다.
숲은 생명력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리고 충만함의 근원은 촉촉한 대지였다. 땅속 깊은 곳에서 올라와 나무의 구석구석을 적시고 빠져나간 수분은 숲의 에너지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곧 수많은 생명의 잉태로 이어졌다. 우리는 모든 생명이 시작되는 숲에서 충만한 생명력을 만끽했다. 축축한 바위 위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한없이 젖어 들었다.
최면상태에서 깨어난 나는 엉뚱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하면 유리병에 촉촉한 공기를 가득 담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옷가지와 책 대신에 병들을 잔뜩 싣고 가, 건조한 샌디에이고 하늘 아래서 하나씩 열어보는 상상은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어이없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남편은 그렇게 좋냐며 놀려댔고, 나는 간신히 울음을 참고 있노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우리는 숲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한결 가벼워진 몸과 촉촉해진 피부로 펜션으로 돌아왔다.
어느덧 한국에 돌아온 지 삼 년이 되었다. 그동안 한국의 봄비와 장마, 가을비와 함박눈을 지켜보며 촉촉함에 대한 갈증은 어느정도 해소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비 내린 숲속과 축축한 흙내음을 사랑한다. 산에서 피어오르는 새벽녘의 안개와 바람결에 날아오는 숲의 향기는 여전히 경이롭기만 하다. 이 촉촉함을 몸속 깊이 새기기 위해 나는 매일 아침 산책에 나선다.
다시 샌디에이고로 돌아가야 하는 나는 특별한 사업을 고안 중이다. 여전히 촉촉함에 목말라하는 그곳 친구들과 지인들을 대상으로 촉촉한 공기를 압축 포장해 팔아볼 참이다. 거기에 이슬이 매달린 작은 풀잎이나 꽃잎들을 더한다면 대박은 떼놓은 당상이지 싶다. 누가 마다하겠는가. 건조한 피부와 메마른 가슴을 적실 수만 있다면.
멀지 않은 건조함의 날들을 위해 나는 오늘도 숲을 찾는다. 깊은 들숨을 통해 밀려든 촉촉함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름 모를 꽃향기가 콧속을 간지렵혔다. 나는 이 땅을 떠나는 전날까지 산책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촉촉함으로 기관지와 폐를 가득 채우고, 혈관 구석구석을 채우는 그 날까지 아침의 숲속 산책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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