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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전나무 숲이 즐거워야 합니다
  • 입상자명 : 최인화
  • 입상회차 : 17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우리 가족은 시간이 날 때마다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에 간다. 전나무 숲에 가면 키 큰 나무와 큰 잎이 뜨거운 해를 가려준다. 햇빛을 전부 가려주는 것은 아니고 조금씩 보이게 해준다. 그때 보이는 해는 좋다. 숲에 오기까지 피하기만 했던 해인데 말이다.
숲길은 계절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나는 것 같다. 봄에는 “봄사각” 가을에는 “가을사각” 잎을 밟을 때마다 이런 소리가 들린다. “내 새깽이, 피아노 치는 소리 같구나.“ 할머니가 숲에만 오면 칭찬을 노래처럼 하신다. 아빠, 엄마도 우리 딸, 키가 더 크고 더 예뻐진 것 같다고 하신다.
그 전나무 숲길 도중에는 잠시 쉴 수 있는 의자가 있다. 그 의자에 앉아서 물을 마시면 땀도 마르고 다시 힘도 난다. 8월 한여름 전나무 숲 옆으로 흐르는 계곡에는 물소리가 시원하다. 그 물소리 앞으로 다람쥐들이 앞서거니뒤서거니 나타난다. 다람쥐들은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고 가족들 앞으로도 왔다갔다 한다. 내가 일어나서 그 다람쥐를 잡으러 가면 저 멀리 사라졌다가는 다시 나온다.
이 숲에서는 할머니, 아빠, 엄마 그리고 나 우리 식구들을 반기는 친구들이 바로 다람쥐들이다. 다람쥐 눈이 얼마나 크고 예쁜지 저절로 말을 걸고 싶어진다. "너희들 뭘 먹으러 왔니?"라고 물으면 금세라도 답을 해줄 것처럼 가만히 나를 지켜본다. 내가 다람쥐 친구들과 노는 동안 우리 가족은 한참을 앉아서 숲에서 나는 바람소리, 물소리를 듣는다. 나는 무대의 주인공처럼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아빠는 내 모습이 발레리나 같다고 한다.
그때마다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애미야 나는 전나무 숲길에서 한숨 잘란다." 그리고는 돗자리에 할머니가 살짝이 눕는다. 우리 할머니는 숲이 좋다고 날마다 이야기하지만 나를 키우느라 숲에 오는 것이 여름철 뿐이다. 할머니는 오래된 숲에는 소망을 들어주는 신이 산다고 했다. 산에 있는 신령님이 나무도 지켜주고 바위도 씻어주고 나비와 잠자리, 다람쥐까지 모두 밥도 주고 잠자리도 준다고 했다.
하지만 산에 사는 신령님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할머니, 산신령은 없는 거 아닐까? 다람쥐들만 있잖아." 그러면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실 뿐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산신령님은 믿는 사람한테만 있다고 하신다. 또 소망을 말하면 안되고 계속 놀아주고 즐겁게 해줘야 한다고 하신다. 잠깐 잠이 든 할머니의 산신령 이야기가 갸웃갸웃해질 때 아빠의 옛날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빠는 숲에서 실컷 운 적이 있단다. 고향 뒷산에서 키우던 소를 잃어버리고 한참을 헤맸는데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모님한테 혼날까봐 집에도 가지 못하고 산속에서 울었다는 것이다. 숲에서 울고 있는 동안 아빠는 하나도 무섭지 않고 소가 나타날 것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빠는 오래도록 숲에 있다가 저녁이 다 돼서 걸어내려왔는데 집에 소가 와 있더라는 것이다.
"야, 너 어디 갔다 왔어?" 아빠가 큰 소리를 쳤지만 반갑고 안심이 되더라는 거다. 그래서 아빠는 숲에만 오면 그 소가 생각이 난다고 했다. 어떻게 소는 자기 집을 찾아올 수 있었을까? 부스럭부스럭 할머니가 한숨을 자고 일어나면서 말씀하셨다. 산신령님이 집으로 데려다 줬다니까 그런다. 와, 정말? 할머니는 전나무 숲에도 신령님이 착한 사람을 지켜준다고 자꾸 말씀하셨다.
우리 할머니는 관절염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힘들다. 내가 유치원 다닐 때에는 할머니와 월정사 적멸보궁까지 올라갔었는데 이제는 더 걷기가 힘들어지셔 속이 상하다. 그래도 전나무 숲길은 걸어다닐 수 있으시다. 하지만 빨리 나아서 꼭 적멸보궁까지 갔으면 좋겠다. 산신령님, 할머니가 이 산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숲에 오면 항상 기도한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는 숲을 너무 좋아하신다. 오래된 숲에는 산신령님이 살고 그래서 그 덕분에 기력도 더 좋아지고 더 행복하다고 한다. “녹색을 보면 눈도 좋아지고 귀도 좋아진다.” 할머니가 TV나 스마트폰을 그만 보고 푸른 산과 숲을 봐야 한다고 늘 말씀하신다. 도시에선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도 희뿌연 건물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 전나무 숲길에 오면 모든 것이 푸른데 말이다. 나도 몸도 마음도 파랗게 되는 것 같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우리나라에 단 하나 뿐인 이 전나무 숲은 할머니를 한숨 고이 자게도 해주고 다람쥐 친구와도 이야기를 하게 해준다. 옛날 이야기 속에 산신령님도 다시 생각나게 한다. 이 숲길에서 우리 가족이 기분 좋게 마주 앉는다. 걷고 이야기하고 숲의 소리를 듣는다. 이 숲길에서 한 가지 마음 아픈 것은 할머니의 걸음걸이다. 할머니가 어릴 때는 할머니가 내 걸음걸이에 맞춰서 걸으셨는데 이제는 내가 할머니의 걸음에 맞춘다. 그래도 이 길을 함께 오래도록 걸었으면 좋겠다.
천년이 된 이 숲이 계속 즐거워야 하는 것은 우리 가족의 소망이 있어서다. 주변이 푸르면 힘이 난다는 할머니, 추억 속으로 돌아가는 아빠와 엄마, 키카 크고 더 예뻐지고 싶은 나. 나는 이 숲이 즐거워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한다. 이 숲이 오래도록 건강해야 우리 가족의 소망을 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길을 잃었던 소도 찾아주고 큰 나무도 지켜주는 산신령님이 기분이 좋게 말이다. 내가 숲을 찾아서 숲을 즐겁게 해주는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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