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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다시 만난 세계
  • 입상자명 : 신명진
  • 입상회차 : 16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나는 도시에서 태어났고 도시에서 자랐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한 동경심으로 나는 숲을 좋아했다. 근처에 나무라고는 작은 공터의 소나무가 전부였기에 어릴 때는 주말마다 녹색이 넘치는 농업기술센터에 놀러 가곤했다. 꽃밭은 예쁘고 앵두나무의 앵두는 맛있어서 나는 그것들을 좋아했다.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한 동경심으로 숲을 좋아했다. 울창한 숲 속에서 피톤치드가 넘치는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산새들은 지저귀고...하는 상상을 해본 적도 있었다. 그랬던 내가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했을 때 이름만으로도 산속에 있는 것 같은 산청의 시골고등학교로 진학한 것은 자연에 대한 동경심과 아주 관련이 없진 않았다.
수목원? 좋아한다. 잘 관리된 나무들이 대결하듯 높이 자란 대구의 수목원은 아주 멋있었고 나무 밑에 자란 조릿대들도 옹기종기 귀여웠다. 식물원? 역시 좋아한다. 식물을 위해 만들어진 환경은 조금 덥지만 신기하게 생긴 식물이나 뒷산에선 볼 수 없는 종류의 식물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지리산? 종주? 천왕봉? 국립공원?...추억 속 아버지를 따라갔던 천주산은 즐거웠다. 어린애가 아빠 손잡고 뛰어다니면 등산 오신 아저씨들이 귀엽다고 먹을 것을 주셔서 기분도 좋았다. 이게 나의 마지막 등산기억이었다. 새로운 경험을 갱신하려하자 그 차이가 너무나 커서 충격을 받을 정도로 옛날의 기억이다. 새로운 등산경험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생겼다.
시내버스같이 생겼지만 산청군과 진주시를 경유하는 버스의 종점에는 우리학교가 있다. 누가 지리산이랑 가까운 줄 모를까봐 우리학교의 1년 일정에는 지리산 종주가 빠지지 않는다. 전교생이 콘서트 티켓팅을 하는 것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국립공원 대피소를 예약하고 종주 일정이 가까워지면 집에서 보내주는 등산용품 택배가 하나 둘씩 학교에 도착한다. 작년에 선배들이 썼던 코펠은 올해 후배가 사용하기 전에 설거지 하고 짝을 맞춘다. 잘못하면 냄비뚜껑 없는 코펠세트를 받는 조가 생길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첫날엔 비가 왔지만 계획대로 산을 올랐다. 차가운 빗방울에 몸은 덜덜 떨리고 우비를 입은 쓸모도 떠올리기 힘들만큼 등산복이 젖었다. 거침없이 흐르는 흙탕물에 몸을 맡기고 같이 쓸려 내려가고 싶었다. 넘어져서 다리가 다치면 등산을 그만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스런 추위에 더불어 고갈되는 체력이 느껴지면서 산을 내려가고 싶다는 갈망만 느껴졌다. ‘상상과 현실은 다르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산을 오르고 또 오르고 가끔은 내려가면서 표지판을 하나씩 지나치는 것만이 나의 낙이 되었다. 하지만 정말 상상과 현실이 다르단 것을 느낀 건 등산의 둘째 날이 밝은 ‘세석평전’이었다. 근육 섬유의 마디마디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외면하고 고개를 들었더니 등산로 옆으로 펼쳐진 넓은 땅이 보였다. 세석평전은 비온 뒤 갠 하늘아래에서 너무 시원하게 빛났다. 경험 없는 상상은 현실보다 빈약하단 것을 깨달았다. 관리된 수목원보다 우거진 지리산 국립공원의 나무들이 더 빛나는 것을 느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정신없이 발만보고 걸었던 어제 하루가 후회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본 산이 너무 아름다워서 지나쳐버린 어제가 궁금했지만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걷는 게 힘들어 자주는 아니었지만 몰아쉬는 숨에 가끔 고개를 두리번거리면 가만히 보고 있고만 싶은 나무와 꽃들이 푸르렀다. 마지막 날 해가 뜨지 않은 새벽, 빛이라고는 헤드랜턴이 전부인 천왕봉으로 향하는 돌길은 너무 조용하고 어두웠다. 온몸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근육통이 소음으로 느껴질 만큼 고요한 그곳은 ‘산’ 속 이었다. 바위를 깎아서 만든 계단을 올라 도착한 천왕봉 정상에서 일출은 보지 못했지만 대신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았다. 구름의 바다는 해를 가렸지만 아쉽지 않았다. 이박삼일의 종주가 이미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안겨주어서 더 이상 받을 손이 없었으니까.
지리산을 다녀오고 숲에 대한 나의 상상을 고칠 필요가 느껴졌다. 현실의 산이 상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은 몸으로 경험했지만 아직 산의 아름다움을 더 알고 싶었다. 책을 많이 읽었다. 숲에서 본 나무들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식물 사전을 읽다가 다양한 산을 가보고 아름다운 숲을 보았던 사람들의 경험이 궁금해서 다른 종류의 책으로 눈을 돌렸다. 요새는 환경에 관련된 책을 읽는다. 지구온난화나 사막화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자연보호에 관심을 둔다. 그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내가 오랫동안 보고 싶은 마음에 소나무 재선충 병이나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 같은 화제들도 주목한다.
나는 지금 산림학과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상상의 숲을 가꾸던 내가 현실의 숲을 만나보려고 한다. 이번 방학에는 나무 사전을 들고 지리산을 다시 가보려고 한다. 작년과 달라진 숲을 다시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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