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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느티나무아래서
  • 입상자명 : 양진영
  • 입상회차 : 1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힘들지? 여기 좀 앉아 있어라.” “네, 할머니.” 이마를 주르륵 타고 내리는 땀을 닦으며 나는 느티나무 아래 작은 평상에 앉았다. 따가운 햇살 아래 땀비를 맞으며 걷다가 시원한 그늘로 오니 정말 살 것 같았다. 할머니댁에 와 오랜만에 산을 타서 그런지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다리가 아팠다. 여기저기 긁힌 상처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도시생활에 익숙해져있는지 하소연하는 듯 했다. 헝클어진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운동화 끈을 다시 매었다. 머리도 다시 묶고... 산을 오르기 전의 반듯한 자세로 가다듬은 후 나는 평상에 앉아 조용히 시골 풍경을 감상하였다. 문명의 손가락이 톡하고 건드린 적도 없을 것 같은 순수 그대로의 산골마을. 언제나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는 이기적인 차들과, 숨쉬는 것 을 불쾌하게 만드는 도시의 오염된 공기 속에서 생활하던 나는 이곳이 마치 편안한 천국과 같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나를 괴롭힐 것이 없는 곳. 나의 행동, 말 하나하나 이 자연에 동화되어 버려서 진정으로 내가 자연속의 일부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곳. “좋다~!” 기지개를 켜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한창 여름이라 전부 녹음 천지다. 저 앞으로 방금 내가 올랐던 산이 보였다. 아침 일찍 새벽공기 마시며 설레임에 산으로 향하던 내가 벌써 이곳에 앉아있다니. 나는 산을 타고나서 다가오는 뿌듯함에 한껏 기분 이 좋아졌다. 밤새 부지런히 움직여 들꽃 잎 사이에 살짝 앉아있을 이슬을 마시며 새벽에 산길을 걸었다. 올라갈수록 점점 험해지는 통에 힘들기는 했지만 우거진 녹음 속을 헤치고 산과 함께 호흡하는 것을 느낄 때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가슴깊이 확인 할 수 있었다. 평상에 길게 누워서 팔베개를 했다. 산을 타느라 피곤했는지 자꾸만 눈이 감기려고 한다. 솟아나는 땀방울과 조용히 땀방울을 앗아가는 여름바람... 느티나무의 거대한 팔 아래 넓게 펼쳐진 그늘 안에서 느껴지는 아늑함... 한참을 눈을 감고 있다가 무언가 휘리릭 움직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마도 새가 나무에 앉았다가 날아가는 소리였나보다. 눈을 뜨자 느티나무의 가지 사이로 새하얀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점점 옹골지게 가지에 붙어있는 느티나무의 잎새 하나하나, 힘차게 하늘로 뻗어나간 가지 하나하나가 눈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이 느티나무 변함이 없다. 내가 어렸을때부터 줄곧 보아왔던 그 모습 그대로이다. 할머니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느티나무였다. 몇 가구 안되는 작은 마을에 온 마을을 다 가릴 듯이 큰 느티나무가 서 있으니 조그마난 어린 나는 마을의 대장이 느티나무라고 생각했었다. 그때는 이것보다 훨씬 커보였지만 지금봐도 역시 크긴 마찬가지다. 나무 기둥도 클 뿐더러 나무 기둥에서 이리저리 뻗어나간 굵은 가지, 잔가지가 정말 가관이다. 그 어떤 화가도 저렇게 자연스러우면서도 통일감있는 곡선을 그려내지는 못하리라. 가지마다 다정하게 얼굴을 맞대어 나있는 잎파리는 느티나무의 백미라고 할 수있다. 너무 장황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소심하 지도 않은 중용의 덕을 가진 느티나무의 잎새들... 거대한 몸뚱이에 소신있는 잎새를 가진 느티나무는 이래서 존경의 마음이 가면서도 너무 부담되지 않는 것 같다. 느티나무의 큰 몸집과 나무에서 나오는 양의 기운 때문에 예로부터 느티나무는 마을의 수호목으로 자리해왔으며 신령한 나무로 생각되어졌다고 한다. 득남과 행운,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느티나무 앞에서 머리 숙여있었을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또한 느티나무는 미래를 예견하는 나무로써의 역할도 했다고 하니 지난 수천년간 우리 민족의 정신 속에 느티나무가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만큼 삶의 애환을 많이 먹고 자라난 느티나무이기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민족과 함께해온 나무는 너무나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소나무, 은행나무, 느티 나무가 제일일 것이다. 소나무는 애국가에도 나오는 두 말할 필요없는 나무이고 은행나무는 수많은 설화와 전설 속에서 신비로운 힘을 발휘하는 영험한 나무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느티나무는 마을의 입구에서 마을을 지키는 나무로 생각되어 우리 나라 웬만한 마을에는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이 세 나무 모두 각자의 매력이 있지만 나는 느티나무에 개인적인 애정이 간다. 그것은 무언가 향토적이고 서민적인 맛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소나무에게서는 독야청청 외로이 서있는 선비의 기개가 느껴지고, 은행나무에게서는 노란 나무의 잎새에서 부처님의 자비로움같은 종교적 향기가 느껴진다. 소나무가 청렴하여 홀로 학문을 연구하는 선비의 모습 이라면 은행나무는 오랜 노력 끝에 인생의 진리를 찾아내어 은근한 미소를 지니고 있는 보살의 모습과 같다. 느티나무는 소나무와 은행나무보다는 고고하지 않다. 대신 마을의 입구에서 숱한 나쁜 기운을 막아주며 마을 사람들의 정을 먹고 자라 그런지 정말로 사람의 냄새가 배어있는 듯 하다. 그래서 더 다가가기 쉽다. 멀리서 느티나무 가지의 잎파리가 땅과 하늘의 경계선을 허물며 펼쳐가는 모습이 힘차고 기분좋다. 마치 마을의 기운이 저러한 듯 생각되어지니까... 세월이 갈수록 근엄해지고 견고해지는 느티나무의 모습을 보며 한 평생을 살았던 사람들의 그윽한 시선도 느티나무 잎새 하나하나에 스며있는 듯 하다. 나도 어렸을 적부터 느티나무를 바라보고 자랐다. 물론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이사오고 나서는 몇 년에 한번씩 밖에 보지 못하지만... 그것이 너무 아쉽다. 내가 늙어 우리 할머니처럼 주름이 얼굴에 주렁주렁 걸린 할머니가 되면 꼭 이 마을에 내려와 느티나무와 함께 일생을 마치려한다. 지금 내가 느티나무 아래서 느끼는 아늑함이 그때에 가서도 여전하리라 믿고 있으니까... 지금까지 수백년간을 변함없는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느티나무가 그때까지도 나를 배신하지 않고 고요히 품어줄 것을 믿기 때문에 나는 다시 느티나무 곁으로 올 것이다. 봄에는 연녹색으로 발그레 빛나며 여름에는 초록빛 건강한 에너지를 힘있게 분출하고, 가을에는 은은한 단풍으로 즐겁게 하고 겨울에는 눈을 머리에 이고 하얗게 웃음짓는 느티나무... 사시사철 아름다운 느티나무에 대해, 그 안에 잠들어 있는 민족적인 정신에 대해, 그리고 느티나무의 넉넉한 포용력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고 있으려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만 가지고 있기에는 아까운 감정이라 는 것. 이런 소중한 생각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 좋을텐데... 도시에서 생활한 아이들이 느끼는 자연이란 어떤 것일까? 단지 소풍 때 놀러가는 주변의 국립 공원 정도? 매스컴에서 항상 보아왔던 것처럼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심각하게 훼손되어 가고 있는 불쌍한 것? 정말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너무나도 적었고, 누구 하나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마음 깊이 느끼게 해줄 사람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산과 나무에 대해 이런 것들을 배운다. 산은 홍수와 가뭄에 대비하여 꼭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에는 이러이러한 곳이 있다. 속씨식물, 겉씨식물, 주로 피는 때, 수분되는 과정... 모두가 겉핥기 식이다. 누구도 그 안에 스며있는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친구들도 깨달았으면 좋겠다. 산은 그저 우리에게 공기를 제공하고 각종 동식물들이 서식하는 곳이 아닌 삶의 진리를 깨우치게 할 수 있는 곳이라고... 내가 느티나무를 보고 그랬듯이 나무에게서 어머니와 같은 포근함을 느끼고 첩첩이 쌓여있는 세월의 두께 를 보고 감동할 수 있다고... 그들에게 내가 경험한 것과 똑같은 자연을 체험시키고 느끼게 하고 싶었다. 자연에서 깨우친 깊은 감정들은 나중에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너무나 큰 도움이 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이나 산림보호정책 등에 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바라건대 이것만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자연과 조금이라도 가까울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기는 것...내가 어렸을 적 소박한 자연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겸손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깨우쳤듯이 어린 이들도 자연 속에서 무언가 깨우치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들은 커 나가면서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산이나, 바다, 나무, 하다못해 길가의 작은 들풀 과 들꽃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얘야, 수박 가져왔다. 수박 먹어라.” 할머니 목소리에 벌떡 일어섰다. “수박이 정말 잘 익었구나. 어서 먹어. 이제 땀은 다 식었지?” “그럼요, 잘 먹겠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내년에 제가 아는 동생들 데려와도 되지요?” “동생들?” “제가 봉사활동하는 곳에 어린 아이들이 있는데요, 이곳에 데리고 와서 보여주고 싶은게 너무 많아서요.” 할머니는 흔쾌히 승낙하셨다. 나는 다시금 느티나무의 넉넉함을 느끼며 위를 올려다 보았다. 어린 아이들 과 같이 자연을 나눌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 뛰었다. 할머니와 정겨운 대화가 오갔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이루어진 나와 할머니와 아름다운 추억도 몇십년 후에 느티나무 아래 계속 간직되어 있겠지? 생각만해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어서 빨리 아이들에게 이런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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