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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사려니
  • 입상자명 : 길덕호
  • 입상회차 : 20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시커먼 짱돌 하나 가슴에 쑤셔 놓고
사려니* 숲에 왔다.
절망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울 줄은 몰랐다.
삼나무 숲 그림자
화사한 온기는 그늘의 힘에 밀려나고
축축한 음지의 걸음으로
나에게로 들어왔다.

비자나무 바둑판의 눈금 위
단수에 걸린 새 한 마리
파닥이다 쓰러진다.
이번 생의 마지막은
이곳에서 비자목의 주름으로 살련다.
허방에 빠진 발목도 접질리는 삶이었다.
설문대할망*도 물에 빠져 죽어 버린
한이 맺혀 들끓는 가마솥의 죽이었다.

물찻 오름을 걸으면서 삼나무를 본다.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껍질이
상처를 싸매 해진 붕대처럼
오래된 절망의 시간을 감고 있었다.
절망은 보이지 않는 곳에 두고 보듬어
항아리에 담아서 곰살맞게 발효시키는 것
줄기와 가지의 가느란 지문에도 햇살이 깃들어
삼나무가 삶나무로 한 발 뭉클 다가선다.

사려니 오름을 오른다.
한 발 두 발 절정에 다다르면서
땀에도 젖지 않는 새의 부리로
그 이름을 읊조려 본다.
사려니 사려니 하다가
살려니 살려니 한다.

삼나무, 비자나무, 때죽나무, 편백나무
상처 입은 나무들이 옹이가 되어
더 깊이 더 단단하게 박혀 있었다.
허방에 바진 발목에서 뿌리가 나고
줄기는 학의 둥지를 틀었다.

사려니 오름에서 해오름이 있었다.



*사려니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한신로에 있는 제주 오름들이 한눈에 보이는 오름. 사려니 숲, 사려니 숲길로 유명하다
*설문대할망 -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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