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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자극이 느껴지는 곳
  • 입상자명 : 김민선
  • 입상회차 : 21회
  • 소속 :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제 21회 산림문화작품공모전 청소년부/글짓기부문 일반주제 우수상

김민선님의 잔잔한 자극이 느껴지는 곳

<잔잔한 자극이 느껴지는 곳>
방학 후 집의 일부가 된 듯 틀어박혀 보내는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분명 무언가를 해야 한다며 머릿속은 이미 육체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지
만 육체는 명령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뭐랄까, 어차피 나가봤자 날
반기는 것은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에어컨 바람이 정통으로 불어오는 곳에 자리를 잡고 생각한다. 방학, 시험으
로 거덜이 난 듯 지친 학생들의 정신 상태를 위해 준 휴식 기간. 나는 이러
한 휴식 기간에 잔잔한 자극이 필요했던 거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 밖에
는 심심한 K-중딩을 만족시켜줄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하늘에선
사람 하나 죽일 듯한 무자비한 햇살이 난사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크나
큰 용기를 품은 채 집 밖으로 발을 뻗은 나를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파 위에서 녹아 내려가던 날 향해 엄마가 일성을 보냈다.
대체 언제까지 뒹굴거리고만 있을 거냐, 정 할게 없다면 같이 등산이라도 하
자. 등산? 산?? 이 더운 날씨에 등산이라면... 아마 올라가는 도중에 실신이
라도 할 것이다. 나는 엄마의 제안을 극구 반대하며 등을 돌렸지만 엄마의
목소리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걸 원한다고 네 입으로 말했잖아.
속는 샘 치고 엄마 말 한 번만 믿어봐~. 엄마는 대충 흘려가듯 꺼냈던 말을
어찌 그리 잘 기억해내는지. 약 십분 간의 대치 끝에 나는 엄마의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조금 더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보자면, 처음 산에 가는 날의
내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10대가 된 이후 거의 처음 가본 산은 내겐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어떤
동화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기 때문에. 산 곳곳엔 유난히 찬란한 아침햇살
이 드리웠고, 발바닥이 흙과 돌에 닿을 때마다 느껴지는 감촉은 마치 이불
위를 걷는 것 마냥 맑고 부드러웠다. 산으로 이동할 적에만 해도 나를 휘감
아오던 무더위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높고 크게 뻗어있는 나뭇가지와
잎들이 시원한 그늘을 선사해주기 때문에, 서늘한 공기가 나를 부드럽게 안
아주며 지나갔다. 어느새 숨이 턱 끝까지 올라올 무렵, 저 멀리 뒤에서 엄마
가 부르는 소리가 쫓아왔다. 기분이 너무 좋았던 나머지 나도 모르게 엄마를
앞질러 가버린 것이다.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산의 전경에 집중해보기
로 했다.
내 시야가 닿는 모든 곳에 나무가 위풍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뭇가지
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 햇빛은 그늘진 어두운 흙길을 살살 비추어 괜한
나의 감성을 자극하곤 했다. 그런가 하면 산 속의 소리는 어떠한가. 그곳에
선 많은 소리가 어우러져 기계음 하나 섞이지 않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
다. 바람에 의해 서로 부딪혀 사각사각 소리를 내는 나뭇잎들... 머리 위를
빠른 기세로 날아다니며 저들끼리 얘기하는 새들의 울음소리. 심지어는 가파
른 돌과 둔덕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도 자연의 소리와
조화를 이루어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해 냈다.
산은 시각적인 면에서도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등산길이 나무들의 색과 흙
의 색 뿐이었다면 등산을 하는 내내 지루했을 건만. 하지만 산엔 내 시선을
독특하게도 사로잡았던 요소들이 곳곳에 있었다. 좁쌀같이 생겨서는 색채는
완전히 비단처럼 고운 꽃들이 있었다. 잎의 갈래조각에 드문드문 적색의 빛
이 감돌았는데, 그것은 마치 일몰 시간의 하늘을 한 데에 압축해 놓은 것 같
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게 만들었다.
험준한 흙길의 끝을 지나자, 눈앞에 보란 듯이 정상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
다. 운이 좋게도, 그 주위에 높은 건물은 없었다. 덕분에 세상의 끝까지 보이
는 느낌. 오전의 바람을 맞은 것도 아닌데 몸과 마음이 상쾌해졌다. 그리 높
은 산도 아니었건만 뭐 이리 숨이 차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마 찬연한 정
상의 풍경을 내 시야에 담아두기 위한 준비 운동이지 않았을까 싶어졌다. 여
태 내가 걸어 올라왔던 산이 이젠 내 발 아래에서 잔잔하게 흔들거렸고, 하
늘은 눈이 부시게 맑았다. 문득 내가 이 광대한 자연을 느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우린 그저 신이 만들어낸 작품에 발을 들인 것뿐인데.
그 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침내 깨달았다. 나는 오늘 산 속에서 평소엔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알게 된 거다. 등산로를 한 걸음 한 걸음 오
를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짜릿함과 대자연을 눈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벅차오름. 그것이 바로 내가 방학 내내 찾아다니던 잔잔한 자
극이었던 것이다.
며칠 후, 오직 스스로의 마음가짐으로 다시 산에 올랐다. 공부가 뜻대로 되
지 않았던 탓이었다. 머릿속이 온갖 울적함으로만 가득 채워지자, 문득 떠오
른 건 휴대폰도, 친한 친구도 아닌 산 이었다. 산에 처음 발을 들이던 날, 내
몸과 마음을 안정적으로 바꿔주던 산의 편안함이 떠올랐던 것이다.
혼자서 오르는 등산길은 처음이었다. 때문에 방황을 살짝 했지만, 금방 나의
길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쩐지 산이 나를 이끌어
주는 느낌이 들었다.
아침 일찍 출발한 것이 아니라 얼마 가지 않은 시간에 해가 저물었다. 아직
울적한 감정은 다 해소되지 않았다. 가파른 흙길을 오를 때마다 흐르는 것이
과연 땀인지 눈물인지 헷갈리게 될 무렵, 나는 계단 길을 끝으로 정상에 도
착했다. 처음 갔을 때보다 인파는 적었지만, 내 마음속은 그 어느 때보다 혼
란스럽고 복잡했다. 정자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음 순간, 서늘
한 바람이 불었다. 나뭇가지들도 함께 살살 움직였고, 내려앉은 머리카락이
뒤로 넘어갔다. 그것은 마치 산이 내 옆에 나란히 앉아있는 것만 같은 느낌
을 주었다. 난 앉은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많은 위로를 받았다. 산은
괜찮다고 조곤조곤 속삭여주면서, 동시에 서늘한 바람을 제 품 삼아 날 가득
껴안았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색다른 자연의 위로였다.
오늘은 산에 찾아가는 지 21일이 되는 날이었다. 무슨 연인사이도 아니고 날
수까지 계산하는가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맞다. 산과 나는 거의 연
인 사이이다. 어쩌면 그것보다 더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일 수도 있겠다. ‘게
임-밥-학원-잠-게임-밥-학원-잠’처럼 항상 똑같은 것만 해오던 내게 산은
인생에 있어 새로운 취미를 알려주었고, 답답함을 스스로 견디지 못할 때면
손을 내밀어 부드러운 위로를 해줬다. 산은 어느새 내 머릿속 한편에 자리를
잡아 결코 잊을 수 없는 삶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산은, 내가 방학 내내 그토록 찾던 잔잔한 자극이 느껴지는 곳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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