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프린트하기
아름다운 산행
  • 입상자명 : 이찬혁
  • 입상회차 : 21회
  • 소속 :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제 21회 산림문화작품공모전 청소년부/글짓기부문 일반주제 최우수상

이찬혁님의 아름다운 산행

<아름다운 산행>
정상 정복에서 느끼는 희열은 산을 찾아 도전하는 사람에게 강한 중독성
을 준다. 코스난이도에 따라 체력적인 고통의 차이가 제각각 다를 수 있지
만, 정상에 도달하기까지의 노력에 따른 보상은 대자연의 파노라마 사진처럼
눈으로 가슴으로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일상에서 보기 힘든 자연
의 모습에 반해 산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상에서 외치는 환호성은
체력적으로 준비된 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고 선물이라 여겼다. 정상을 향
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강한 의지와 건강한 신체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산행
인의 기본적인 자세라고 보았다.
최근 들어 가족 산행에서 체력적으로 너무 지치고 힘들어하는 분은 우리
엄마다. 가족 산행을 하다 보면 가끔 빨리 정상에 도달해서 하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자주 찾는 산일수록 지리적 익숙함에 재빠른 등
반 후 집에서 게임을 하며 쉬고 싶다는 욕심이 더 생긴다. 하지만 숨쉬기 운
동만 해서 힘들다는 농담이 야속할 만큼 약한 체력의 엄마로 인해 산행 시
간이 지체될 때면 여러모로 민폐를 준다고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사
랑하는 엄마이기에 민폐라는 이기적인 생각보다 안타까움과 기다림의 여유
를 가질 수 있었다. 지친 발걸음이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도록 손잡아 끌어주
며 응원의 힘으로 온 가족이 정상에서 모두 시원한 바람을 마시며 탁 트인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착용하
고 등산하면 예전보다 땀나고 답답함에 지칠 때도 있지만, 학업 등 여러 가
지 스트레스를 잊고 몸과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뿐해지는 기분이 들어 산을
찾고 싶은 마음이 또 생긴다.
우리 가족은 날 좋고 시간만 맞으면 자주 오르는 산이 있다. 집 가까운 곳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가덕도 연대봉이다. 정상까지 가는 장거리 코스가 다양
하지만, 부근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봉수대가 있는 정상을 오를 수 있는 짧은
코스도 있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전망은 연대봉만의 선물이다. 올해 봄
산행 중 기억나는 일이 있다. 연대봉의 벚꽃이 저물어가던 시기였다. 하루는
아빠와 단둘이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을 하였다. 엄마로 인해 체력을 보충하
던 중간 쉬는 시간이 사라지니 왕복 한 시간 안으로 끝내고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타고 나서 즐길 수 있는 게임 시간이 늘어난다는 생각으로
다리에 힘도 부쩍 들어갔다. 7월의 무더위도 없던 시기라 쉬지 않고 정상까
지 치고 올라가기로 했다. 코로나로 예전보다 등산하는 사람들은 많지는 않
았지만 그래도 산을 오르는 이들은 끊임없이 만날 수 있었다. 가는 도중 이
상한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와 대학생 손녀가 아주 천천히 걸어가
는 모습이 보였다. 한 손은 스틱으로 땅을 치고, 다른 한 손은 놓치지 않을
듯 팔짱을 끼고 꼭 붙어서 거북이 기어가듯 너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다.
갈증도 해소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이에도 그 두 사람의 걸음 폭
은 나아지지도 않고 그대로였다.
‘저 걸음으로 걷다가는 정상까지 갈 수 있나?’
엄마보다 더한 저질 체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무런 정보도 없이 산행을 시작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증을 채우고 그대로 직진하여 정상의 목표를
달성하고 하산을 할 수 있었다. 하산길에는 시간적 여유로움으로 쉼터 정자
에서 땀을 식히며 쉬고 있는데 아까 그 커플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며 우
리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벌써 정상을 찍고 왔다는 자부심 가득한
눈빛으로 다시 그들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정상을 향한 관심보다는 함께 걸
어오면서 산속 자연이 주는 촉각을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있는 이상한 말소
리가 더 크게 들렸다. 나뭇가지에 얼마 남지 않는 벚꽃 향기의 후각부터 지
나가는 풀 한 포기까지 놓치지 않고 만지는 촉각까지 그리고 시각을 대신할
걸어온 길에 관해서도 소상히 안내하고 귀담아들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
가 너무 이상하면서도 신기했다. 진짜 할아버지와 손녀가 할 수 없는 대화
다. 처음에는 귀만 쫑긋 세우며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바로 앞 시야에 들어
서자 그들을 더욱 유심히 살펴볼 수 있었다. 산행 스틱과 사뭇 다른 지팡이
였고 자세히 보니 노인은 시각장애인이었다. 초보 산행이라 조심스러워 걸음
폭이 유난히 작았고 대학생 누나의 보호 아래 아주 천천히 산길을 밟으며
산을 느끼고 있었다.
‘시각장애인도 산행할 수 있나? 평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정상까지는 깔
딱고개처럼 오르막이 심하고 돌길인데 괜찮으려나?’
갑자기 신체 건강한 보통 사람도 힘들다는 산행을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만 같았다. 힘든 여정의 결과가 눈에 보
이는데 왜 이런 일을 하려는 건지 그리고 연대봉을 오르면서 주변의 아름다
운 풍경도 하나도 감상할 수 없는데 뭐하러 등산을 하려는지 의문이 들었다.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으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
다. 과연 정상을 올랐을까? 정자에서 포기하고 하산을 하였을까? 하지만 정
자까지의 여정도 초보자에게는 쉬운 곳이 아니다. 게임보다 검색을 통해 시
각장애인의 등산을 돕는 산행 자원봉사가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
다. 비포장길의 험난한 산행길이지만 마음의 눈으로 산을 담아가고 산에 대
한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
웠다.
지금까지 산을 오르면서 일상에서 지친 마음을 자연에서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은 비장애인이라 불리는 사람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튼튼한 두 다리가
필요하고 길을 똑바로 찾아갈 수 있도록 볼 수 있는 눈은 필수 조건이라 생
각했다. 산은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다. 하지만 산을 찾는 이는 다르다는 편
견이 있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산은 누구나 포용한다. 산이라는 존
재는 자신을 찾는 모든 이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고 있었는데 말이다. 아름다
운 동행으로 산행을 하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산이 주는 선물은 나눌수록 기
쁨이 더 커지는 것 같다. 뒤늦은 감동으로 산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정상만
오른 기분이 든다. 비록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운 모습을 눈으로 담을 수 없
고 나무들의 속삭이는 노랫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산에 대한 행복한 추억을
영원히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자는 정상 정복의 희열을 절대 느
낄 수 없다는 자만심이 부끄러워졌다. 앞으로 나도 아름다운 산행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자유와 치유를 선물하는 산에 대
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좋은 추억을 쌓아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작품은 무단 복제 및 이용할 수 없으며, 타인의 권리 침해로 발생하는 법적 문제는 본인에게 있습니다.
만족도조사
열람하신 정보에 대해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조사선택

COPYRIGHTⒸ 산림청 SINCE1967.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