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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산에 가자는 건 화해하자는 거야
  • 입상자명 : 임지원(이일여자고등학교 2학년)
  • 입상회차 : 19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한가로운 주말 아침. 누군가 내방 문을 '똑똑'하고 두번두드린다. 아마 문밖의 사람은 어제 다툰 오빠일 테다. 그리고 나는 이어질 행동도 추측할 수 있다. 보나마다 나에게 산에 가자는 말을 하겠지.
어릴 적 오빠와 내가 싸울 때 마다 부모님은 우리를 집 뒤의 산에 데려가고는 했다. '배산'이라고 불리는 동네이 아주 작은 산이었는데, 어린 오빠와 내게는 엄청 크고 넓은 곳으로 통했다. 우리는 산까지 걸어가는데 걸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서로를 향해 분노의 눈빛을 보내며 씩씩거렸다. 그러나 산에 도착해 엄마 아빠와 함께 걷다 보면 우리를 감싸고 있던 긴장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어느새 여러 호기심으로 입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오빠와 나는 청설모와 마주치는게 제일 좋았다. 그래서 우리보다 훨씬 작은 몸을 가지고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너나 할 거 없이 "저기 청설모 지나간다!" 하고 신나서 소리치기도 했다. 아주 가끔 청설모가 가만히 서 있었는데, 그땐 우리도 가만히 멈춰 청설모와 눈을 맞추었다. 아마 청설모도 우리를 신기한 존재로 어쩌면 익숙한 존재로도 쳐다보고 있었을 거다. 저 인간들 또 왔냐며.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스팔트가 아닌 울퉁불퉁한 흙길 위에 서 있는 것도 좋아했다. 일부러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산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상쾌한 공기를 맘껏 만끽했다. 내가 산에만 가면 자주 눈을 감고 서 있는 이유였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쌓여있다는 건 내게 안정감을 주기도 했다. 그런 내 옆에서 오빠는 생물들에 눈길을 돌렸다. 제자리에 쪼그리고 앉아서는 무언가를 유심히 쳐다봤다. 오빠의 관찰 대상은 때로는 버섯이었고, 풀이나 나무였으며, 나무에 붙어 있는 이끼였다. 그렇게 매번 관찰 대상이 달랐다.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는 게 지루하고 싫증 날 법도 한데 오히려 오빠의 눈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나고 있었다.
오빠는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던 축구나 야구, 게임 같은 것들 무엇 하나 취미로 즐기지 않았다. 대신 유별나게도 책상에 앚아 책을 자주 읽었다. 주로 곤충, 풀, 동물 같은 생물에 관련된 책이었다. 사실 나는 책과 산은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오빠가 산을 좋아 하는걸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나는 오빠 옆에 같이 쪼그리고 앉아 물었다. "오빠는 산이 왜 좋아?" 다소 뜬끔없던 질문에 오빠는 답했다. "책에서만 보던 여러 생물을 산에서는 실제로 볼 수 있잖아. 생물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내 눈으로, 코로, 피부로 직접 느낄수 있고. 그건 책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인 것 같아." 하고. 지금에서야 생각하는는 거지만 그때 오빠가 흙 위에 쭈그려 앉아 있던 모습과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던 모습이 참 비슷했던 것 같다.
우리는 그날 이후로도 자주 다퉜기에 '배산'을 찾는 횟수가 잦았다. 산과 우리 가족만이 아는 추억이 쌓여가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며 '배산'을 찾는 횟수는 자연히 줄어들었음에도, 여전히 다투고 나면 꼭 그 산을 찾았다. 비록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 많이 사라졌지만,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느껴지는 산이 품고 있는 냄새에 동심으로 돌아간 듯 기분이 나아지곤 했다. 그렇게 산과 함게 커가며 자연스레 우리 남매에게 "산에 가자"는 말은 곧 화해하자는 말로 정해졌다. 앞서 내가 오빠의 다음 행동을 추측할 수 있는 것도 이 탓이다. 역시나 곧이어 오빠는 말한다. "지원아 배산 갈래?" 내가 다음에 할 대답을 오빠 역시 쉽게 유추해 낼 것이다. 나는 산을 거절하는 법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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