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ZINE VOL.125
본격!! 식물 생태와
생물 상호작용
    잡식보다 편식! 곤충이 먹이식물을 선택한 이유
 
▲층층나무에 몰려들어 짝짓기하는 황다리독나방
올해 6월 초순 아침이었다. 종합연구동 주차장 뒤쪽 개천 주변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비인지 나방인지 모를 작고 하얀 손수건들이 공중에 떠다니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수백 마리로 불어나 선녀들의 군무인 양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광경을 연출했다. 가까이서 보니 더듬이가 안테나 모양인 것이 나방 종류였다. 성깔 있게 생긴 얼굴에 주황색 털양말을 앞다리에 신은 점이 특이했다. 아침부터 뭣들 하나 싶어 지켜보니 집단으로 짝짓기하는 중이었다. 지나던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길, 저 하얀 나방이 매년 저렇게 층층나무에만 몰려서 나타난다고! 그러고 보니 그 단체 미팅의 배경이 층층나무였다. 층층나무와 나방으로 검색해 본 결과 그건 황다리독나방이었다. 나방이지만 낮에도 활동하며 2002년에 국내 최초로 산림피해 해충 명단에 오른 종으로, 애벌레의 먹이식물인 층층나무에 알을 낳는다고 한다. 층층나무 외에 곰의말채나무, 때죽나무, 아까시나무 등의 잎을 먹는다는 자료도 있다.
층층나무는 층층이 뻗은 가지마다 넓적한 잎을 내어 저 혼자 햇빛을 독차지하며 크는 나무다. 그런 층층나무의 잎을 황다리독나방이 갉아 먹으면 층층나무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하층부의 식물이 햇빛을 받아 싹을 틔우거나 크게 자랄 기회를 얻는다. 황다리독나방이 층층나무에는 해로울지 몰라도 다른 식물에는 이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황다리독나방이 층층나무에 해를 끼치긴 해도 죽음에 이르게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건 당연한 이야기다. 먹이식물이 죽으면 자신들의 산란처가 사라지는 것이므로. 다만, 황다리독나방은 사람 피부와 접촉하면 알레르기 증상을 유발한다고 해서 천적을 이용한 퇴치 방법이 연구되기도 했다.
▲황다리독나방 수컷
▲황다리독나방의 짝짓기(위쪽이 암컷)
1. 꼬리명주나비 애벌레의 선택
그렇게 특정 식물을 먹이식물로 삼는 곤충은 그 식물의 잎에만 알을 낳는다. 잘 알려진 예가 꼬리명주나비다. 꼬리명주나비는 애벌레가 쥐방울덩굴의 잎만 먹으므로 쥐방울덩굴에만 알을 낳는다. 어른벌레는 주로 여름에 나타난다. 너울너울 날아다니면서 짝을 찾는 꼬리명주나비가 보인다면 그 주변에 쥐방울덩굴이 자라는 것이 틀림없다. 먹이식물이 쥐방울덩굴뿐이므로 쥐방울덩굴이 사라지면 꼬리명주나비도 공멸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안고 살아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꼬리명주나비는 왜 그런 아슬아슬한 생존법을 택했을까? 식성을 잡식으로 바꾸어 다양한 식물을 먹을 수 있다면 생존 가능성이 클 텐데, 왜 굳이 쥐방울덩굴 하나만 먹는 편식을 택해 쥐방울덩굴의 생존에 자신들의 생존까지 걸었을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의 단서는 쥐방울덩굴이 독성 식물이라는 데 있다. 쥐방울덩굴은 열매와 뿌리를 마두령(馬兜鈴)이라는 이름의 약재로 쓰지만, 많이 복용하면 혼수, 지각마비, 혈압강하 등의 증상을 유발하는 독초다. 『독을 품은 식물 이야기』라는 책에 따르면 쥐방울덩굴에는 ‘우유병(牛乳甁, milk sickness)’을 유발하는 벤조푸란 톡솔(benzofuran toxol)과 신장질환을 발생시키는 아리스톨로크산(Aristolochic Acid)이 들어 있다고 한다. 꼬리명주나비는 이런 독에 내성을 길러 쥐방울덩굴을 먹이식물로 삼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그 나름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꼬리명주나비의 짝짓기(위쪽이 수컷, 아래쪽이 암컷)
▲꼬리명주나비의 애벌레
▲꼬리명주나비의 먹이식물인 쥐방울덩굴
▲쥐방울덩굴 잎에 낳은 꼬리명주나비의 알
2. 독성 식물을 먹이식물로 삼은 네 가지 이유
기본적으로 어른벌레는 꽃꿀 등 다양한 먹이를 먹지만, 애벌레는 특정 식물만을 먹는다. 특정 식물 중에서도 독성 식물을 먹이식물로 삼았을 경우 애벌레가 얻는 이득을 네 가지 정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천적의 먹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애벌레는 어리고 연약해 천적으로부터의 보호가 필요하다. 그러나 곤충 세계에서는 어미가 애벌레를 돌봐주는 경우가 드물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해야 하던 애벌레는 식물의 독을 몸에 축적하게 됐을 것이다. 온몸에 먹이식물의 독을 품고 있으면 천적이 함부로 먹을 수 없으므로 안전하게 애벌레 시기를 지날 수 있다.
둘째, 초식동물에 섭식 당할 가능성이 작다. 알이나 애벌레가 머무는 공간 자체가 대개 먹이식물이라 초식동물의 섭식 활동에 먹힐 우려가 있다. 독성 식물까지 섭식하는 초식동물은 많지 않으므로 비독성 식물보다 독성 식물에 기거할 때 알이나 애벌레의 생존 가능성이 크다.
셋째, 먹이식물을 독식할 수 있다. 먹이식물에 대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곤충들은 되도록 다른 식물을 먹이로 삼는 전략으로 서로 간의 경쟁을 피한다. 그러나 식물의 종수보다 초식 곤충의 종수가 더 많은 현실에서 어느 정도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다른 곤충이 먹지 않는 독성 식물을 먹을 수 있다면 그 식물을 독식할 수 있는 이점(利點)이 생긴다.
예를 들어, 갈라파고스땅거북은 애기독사과나무의 열매를 먹는다고 한다. 애기독사과나무는 장미과가 아니라 대극과의 나무로 만지면 심한 피부염을 유발하는 식물이지만, 갈라파고스땅거북은 놀랍게 적응했다. 이것은 갈라파고스땅거북이 애기독사과나무에서 독을 축적하려고 했다기보다 아무도 먹지 않는 독성 열매를 먹을 수만 있다면 별다른 경쟁 없이 먹이를 독차지할 수 있으므로 애기독사과나무 열매의 독에 서서히 적응한 결과로 보인다.
넷째, 냄새뿔(취각, osmeterium) 같은 방어 물질의 원료를 얻을 수 있다. 냄새뿔은 특유의 냄새를 풍기는 뿔처럼 생긴 기관이다. 꼬리명주나비
애벌레를 건드리면 머리와 앞가슴 사이에 숨어 있던 오렌지색의 냄새뿔을 ‘V’자로 불쑥 내밀어 특유의 냄새를 풍긴다. 천적으로부터 맨몸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화학 물질을 분비하는 방어 전략이다. 이 방향성 물질을 만들려면 먹이식물에서 원료를 취해야 하는데, 그런 원료는 대개 독성 식물이나 방향성 식물에서 얻을 수 있다. 참고로, 복어도 자연생태계에서 먹이를 통해 독을 축적하며 그래서 바다가 아닌 양식장에서 독이 없는 사료를 먹여 기른 복어는 독이 거의 없다.
꼬리명주나비 외에 사향제비나비도 쥐방울덩굴이나 등칡 같은 쥐방울덩굴과 식물의 잎에 알을 낳는다. 사향제비나비 애벌레 역시 냄새뿔을 이용해 천적의 공격을 방어한다. 이렇듯 냄새뿔을 방어 전략으로 펴는 애벌레는 독성 식물을 먹이식물로 삼는다. 대표적인 예가 호랑나비 종류다.
▲사향제비나비
3. 호랑나비 종류의 먹이식물 알아보기
①호랑나비보다 작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애호랑나비는 봄에 알을 낳는다. 그래서 ‘이른봄애호랑나비’라고도 한다. 숲에 서식하면서 주로 진달래나 얼레지 등의 꿀을 먹으며 진달래가 피는 10일 정도만 나타난다. 짧은 생의 허무함을 한탄할 겨를도 없이 애호랑나비는 꽃꿀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대로 짝을 찾아 짝짓기하고는 족도리풀 종류의 잎 뒷면에 알을 낳는다. 족도리풀 종류도 쥐방울덩굴과의 식물로, 뿌리를 세신(細辛)이라는 이름의 약재로 쓰는 독성 식물이다. 애호랑나비의 애벌레도 족도리풀의 독성분을 몸에 축적하며 냄새뿔의 원료를 얻기 위해 족도리풀을 먹이식물로 삼는다.
▲얼레지에서 꿀을 먹는 애호랑나비
▲족도리풀 잎 뒷면에 낳은 애호랑나비의 알
②호랑나비의 애벌레는 산초나무나 탱자나무 같은 운향과 식물을 좋아한다. 운향과 식물은 독까지는 아니어도 특유의 냄새를 짙게 풍기는 식물군이다. 호랑나비 애벌레는 4령까지는 새똥처럼 생긴 외모로 천적을 속이고, 종령에 이르러서는 가슴에 눈알 무늬가 있는 초록색 몸뚱어리로 변신해 뱀이라도 되는 양 행세하며, 냄새뿔로 천적을 놀라게 한다. 냄새뿔이 오렌지색인 데다 향도 오렌지와 비슷해서 사람의 후각에는 나쁘지 않게 느껴지는 냄새다.
제비나비, 산제비나비, 긴꼬리제비나비도 운향과 식물을 먹이식물로 삼는다. 이 중 제비나비와 긴꼬리제비나비가 냄새뿔을 이용한 방어 전략을 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랑나비의 짝짓기
▲호랑나비 애벌레의 냄새뿔
▲제비나비의 애벌레도 냄새뿔로 방어한다
▲긴꼬리제비나비의 애벌레도 냄새뿔로 방어한다
③산호랑나비 애벌레는 미나리, 기름나물, 어수리, 당근, 참당귀 같은 산형과 식물에서 볼 수 있다. 미나리과로 부르기도 하는 산형과 식물은 미나리가 기본적으로 독성 식물인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대개 독을 함유하고 있다. 산형과 식물은 쿠마린(cumarin)류의 독성 물질을 만들어 몸에 저장하는데, 쿠마린류는 미나리와 비슷한 냄새가 난다. 산호랑나비 애벌레 역시 산형과 식물을 먹어 독성분을 몸에 축적하며 냄새뿔을 이용한 방어 전략을 펴기 위해 산형과 식물을 먹이식물로 택한 것으로 보인다.
▲산호랑나비
▲산호랑나비 애벌레의 냄새뿔
4. 비독성 식물을 먹이식물로 선택하는 이유
작은검은꼬리박각시는 워낙 재빨라 셔터 버튼에 손가락을 올리기 무섭게 뷰파인더 밖으로 사라지곤 하는 나방류다. 그런데 꽃이 없는 곳에서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채 비행할 때면 꼭두서니 주변을 서성인다. 알을 낳으려는 것이고, 애벌레의 먹이식물이 꼭두서니라서 그렇다. 꼭두서니는 수염뿌리에서 붉은색 염료를 뽑아 썼던 식물이다. 천초근(茜草根)이라는 이름의 약재로 썼고 천연색소 외에 식품첨가물로도 썼지만, 2000년대 들어 신장암과 간암을 유발하는 독성이 보고되면서 사용이 중단됐다. 독성이 분명히 있기는 하나 꼭 독을 취하기 위해 작은검은꼬리박각시 애벌레가 꼭두서니를 먹이식물로 삼은 것은 아닌 듯하다. 꼭두서니는 전체에 짧고 거친 가시가 나 있어 초식동물이 섭식을 꺼리는 식물이라 알이나 애벌레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게 아니라면 작은검은꼬리박각시 애벌레가 자기 기호에 맞는 먹이를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박각시 종류마다 먹이식물이 다르다는 점이 그 방증이다. 한마디로, 먹고 싶은 것을 먹겠다는 것이다. 앞서 제시한 황다리독나방도 애벌레의 입맛에 의해 층층나무가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여러 식물이 아니라 한 종류의 식물만 먹게 된 경우에는 애벌레가 어른벌레와 비교해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데다 이동하게 되면 천적에 노출될 위험성이 크므로 한 가지 식물만 먹도록 강요당한 것일 수 있다.
▲꽃댕강나무의 꽃에서 정지비행을 하며 꿀을 빠는
작은검은꼬리박각시
▲꼭두서니 잎 뒷면에 낳은 작은검은꼬리박각시의 알
5. 먹이식물은 불완전변태보다 완전변태를 좋아한다
번데기 과정을 거치느냐 거치지 않느냐에 따라 곤충은 완전변태와 불완전변태로 나뉜다. 여러 번의 탈피를 거쳐 어른벌레가 되는 불완전변태 곤충은 매미, 잠자리, 메뚜기 등으로 대개 애벌레와 어른벌레의 생김새가 닮은 편이다. 그에 비해 번데기 과정을 거쳐 어른벌레가 되는 완전변태 곤충은 나비, 벌, 파리 등으로 애벌레와 어른벌레의 생김새가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완전변태는 지렁이나 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던 애벌레가 새와 같은 모습의 어른벌레가 되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식의 극적인 반전을 보인다.
완전변태가 보이는 알, 애벌레, 번데기, 어른벌레라는 4단계의 전이는 애벌레와 어른벌레가 서로 다른 진화 경로를 따르도록 해준다고 한다. 애벌레는 섭식과 성장에 치중하고, 어른벌레는 교미와 산란에 주력하는 존재로 살아간다. 나비를 예로 들자면 애벌레는 무한궤도에 놓인 소화계로 표현하고, 어른벌레는 성에 전념하는 비행기로 표현하곤 한다.
반면에 알, 애벌레, 어른벌레 단계로 불완전변태를 하는 곤충은 어린벌레(약충)와 어른벌레가 서식지나 먹이식물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 완전하게 발달한 어른벌레의 날개와 성기를 빼면 그 어떤 단계도 성장 혹은 생식으로 확실하게 특화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불완전변태보다 완전변태가 성장과 생식의 역할을 확실하게 분담하는 방식임을 알 수 있다. 불완전변태 곤충과 달리 완전변태 곤충은 애벌레와 어른벌레의 먹이가 겹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완전변태 곤충의 애벌레가 선택한 먹이식물은 애벌레 발생 시기 동안 피해를 좀 입는다고 하더라도 번데기 단계로 접어들면 충분히 회복할 시간을 갖게 된다.
▲완전변태를 하는 주홍박각시의 중령 애벌레
▲불완전변태를 하는 매미류의 탈피각
6. 애벌레의 제한된 먹이 선택과 생태계의 변화
사람의 자식은 살아가면서 어미의 식성을 따르지만, 곤충의 자식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입맛을 좇는다. 어른벌레는 애벌레의 까다로운 입맛을 외면할 수 없으므로 특정 식물을 찾아가 산란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일까? 낳아주면 그만이라는 듯 어른벌레는 애벌레의 보육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럴수록 애벌레는 먹이식물에 집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애벌레의 이러한 제한된 먹이 선택은 먹이식물의 생활사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게 만든다. 즉, 먹이식물의 발생 시기에 맞춰 어른벌레의 발생과 짝짓기 및 산란 시기가 유도되는 것이다. 곤충마다 출현 시기가 조금씩 다르고 사는 장소도 약간씩 다른 이유는 애벌레의 먹이식물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후 변화로 먹이식물의 발생이 점점 빨라지는 추세이고 급작스럽게 변하기도 한다. 그에 발맞춰 곤충의 발생도 점점 빨라지는 추세이고 급작스럽게 변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급작스러운 변화가 많아져 불안정성이 증가할수록 먹이식물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고 생태계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모름지기 변화는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래야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1. Gilbert Waldbauer(길버트 월드바우어), 김홍옥. 2017. 곤충의 통찰력 해충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에코리브르. p. 16.
2. 김원학, 임경수, 손창환. 2016. 독음 품은 식물 이야기. 문학동네. pp. 408-410.
3. 김정환. 2008. 곤충 쉽게 찾기. 진선출판사.
4. 백문기. 2016. 화살표 곤충 도감. 자연과 생태.
5. 정부희. 2017. 사계절 우리 숲에서 만나는 곤충. 지성사.
6. 정부희. 2018. 먹이식물로 찾아보는 곤충도감. 상상의숲.
7. 조홍섭. 2018. 다윈의 섬 갈라파고스. 지오북. pp. 166-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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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전문가 이동혁    석사후연구원 김한결   임업연구사 조용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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