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ZINE VOL.127
전시원이
들려주는 이야기
겨울을 맞이하는 식물의 자세
 
울은 생물들이 살아가기가 힘겨운 고난의 시기입니다. 동물들은 춥고 배고픈 시간을 어떻게든 버텨내고 살아남기 위해서 지방을 비축하고 털갈이 등을 하면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철새처럼 따뜻한 곳으로 공간을 이동하거나 파충류처럼 겨울잠을 자면서 시간 이동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 식물은 움직이지 못해 훨씬 더 절박하기에 동물들보다 훨씬 다양한 방법으로 겨울날의 추위와 건조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발한 식물들의 겨울준비와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다양한 모습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겨울 속의 식물들
나무와 풀은 추운 겨울을 대응하는 자세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나무는 지상부가 겨울에도 남아있으며, 낙엽수의 경우 겨울눈을 만들어서 다음 해 봄을 준비하고 잎을 떨구어낸 후에 긴 휴면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겨울눈의 모양은 종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으므로 분류키로 활용될 수 있지만 다래나무과(Actinidiaceae) 식물처럼 줄기 속에 감추어져 있어서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암나무의 수꽃눈
비목나무의 잎눈과 꽃눈
다래의 묻힌눈
겨울눈은 단풍이 들고 잎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눈에 띄기 시작하지만, 겨울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생활사를 철저히 계획하고 관리하는 식물들이기에 닥쳐올 위기에 대한 준비 또한 나중으로 미루지 않습니다. 겨울눈은 왕성하게 성장하고 잘나가는 시기에 준비가 시작되어서 겨울이 오기 훨씬 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생육을 억제하는 호르몬인 아브시스산(ABA)을 축적해서 일정한 환경조건이 주어질 때까지 깨어나지 않도록 했습니다. 더 꼼꼼한 식물도 있는데, 오미자나 쪽동백나무 같은 나무들은 예비군인 덧눈(부아)까지 만들어서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변수까지도 대비해 놓았습니다.
오미자의 덧눈
때죽나무의 덧눈
쪽동백나무의 덧눈
얼지 않도록 추위에 대비하는 것과 함께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붉게 변하는 잎과 줄기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가을에 강렬한 색으로 단풍이 드는 나무들에 대해서 천적들의 공격이 줄었는데, 이것은 식물체가 병이 들었거나 독성이 있다는 것으로 동물들에게 보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먹이가 부족한 시기에는 어린줄기도 피해를 받을 수 있는데 겨울에 붉은색의 줄기는 초식동물들의 접근이 줄어든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흰말채나무는 여름에는 초록색 줄기로 지내다가 가을에 단풍이 들기 시작할 때 줄기의 색도 붉어지기 시작합니다. 경고색으로 무장해서 배고픈 천적들을 피하는 것도 겨울을 맞이하는 이들의 특화된 생존전략입니다.
흰말채나무의 봄과 겨울
나무와 달리 풀들은 줄기와 잎을 정리해버리고 씨앗이나 땅속의 뿌리, 근경, 인경 등으로 겨울을 보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의외로 잎이나 휴면아를 지상부에 유지한 채로 이 시련을 견뎌내는 풀들이 적지 않습니다. 바위솔속(Orostachys) 식물은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 되면 꽃대를 올리지 못하는 아직 어린 개체들이 겨울준비에 착수합니다. 줄기 생장을 하지 않아서 잎과 잎 사이의 간격을 최소화하고 서로를 감싸서 커다란 겨울눈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응축된 상태로 휴면하다가 봄이 오면 다시 벌어지면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2019년 10월 10일
2019년 12월 17일
2020년 3월 26일
연화바위솔 휴면아의 변화 모습
그런데 잎들을 오므리고 겨울잠 자는 바위솔들과 달리 과감하게 잎이 펼쳐진 상태로 겨울을 맞이하는 풀들이 있습니다. 냉이, 달맞이꽃, 봄맞이 등은 한겨울에 땅바닥에 붙어서 잎을 펼친 모습이 장미꽃과 비슷해서 로제트식물(rosette plant)이라고 부릅니다. 이 풀들은 씨앗에서 발아한 첫해에는 영양생장으로 양분을 저장하면서 겨울을 지냅니다. 그렇게 추위를 온몸으로 견뎌내고 나서 다음 해에 꽃대를 올리고 씨앗을 키워낸 후 짧은 생을 마감하는 생활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2020년 07월 24일
2020년 08월 31일
2020년 09월 28일
2020년 12월 02일
달맞이꽃의 로제트화 과정
로제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핵심은 위쪽으로 줄기를 올리지 않으면서, 새로 만들어진 잎이 아래쪽의 잎에 그늘을 드리우지 않는 위치에 배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장미꽃의 모양이 나타나게 됩니다. 잎들이 뿌리에서 모여나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잎과 잎 사이의 간격을 최소화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로제트 형태가 만들어지는 원리는 나무들이 만드는 겨울눈의 기작과 비슷합니다. 둘 다 마디 사이가 자라지 않으면서 최대한 단축된 짧은 줄기 상태로 겨울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봄이 오면 만들어지는 성장호르몬에 의해 줄기와 잎은 빠른 속도로 길어지게 됩니다.
2020년 08월 21일
2020년 09월 28일
2020년 11월 24일
봄맞이의 로제트화 과정
겨울은 살아가기가 어려운 시기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키가 큰 식물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봄이 되면 누구보다 먼저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활용하는 것이 로제트식물의 특별한 생활사입니다. 그렇게 식물들은 위기를 또 다른 기회로 만들면서 살아갑니다.
<참고문헌>
윤주복. 겨울나무 쉽게 찾기. 진선출판사, 2007.

Hamilton. W.D, Brown S.P. 2001. Autumn tree colours as a handicap signal. Proceeding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B. Biological Science, 268(1475):1489-1493.
수목원과
연구원 안은주     임업연구사 윤정원
copyright(c). KOREA NATIONAL ARBORETU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