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ZINE VOL.137
생태 과학 돋보기
   그들만의 아마조네스 건설을 위한 아포믹시스
 
1. 왕초피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노랑딱새(국립수목원 21.11.12.)
1. 원더우먼은 왜 바깥세상으로 나와야 했나?
  아마조네스(Amazones)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전사 부족인 아마존(Amazon)의 복수형이다. 이들은 군신(軍神) 아레스와 요정 하르모니아의 후손으로, 활을 쏠 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오른쪽 유방을 제거했다고 한다. 때문에 ‘유방이 없다’는 뜻에서 부정사 ‘a’와 유방인 ‘mazos’를 합쳐 아마존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예술 작품들은 아마조네스의 가슴이 있는 것으로 표현했다. 그러므로 아마존이라는 이름에서 거꾸로 유방이 없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잘못된 어원설을 주장하는 이도 있다.
  아마존은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1994년에 설립한 미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로 통하기도 한다. 그 아마존의 로고를 보면 화살표 하나가 A에서 Z까지 연결하고 있다. A to Z는 ‘처음부터 끝’을 의미하는데 세상의 모든 제품을 보유하고 배송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런데 그 화살표가 묘하게도 아마존 여전사의 화살을 연상시킨다.
  아마조네스 신화는 2017년 ‘갤 가돗’ 주연의 영화 ‘원더우먼’의 서사적 배경이 되어 스크린 위에 장엄하게 펼쳐지기도 했다. 아마조네스의 섬인 ‘데미스키라’가 제1차 세계대전에 휩싸이는 장면에서 총을 들고 나타난 독일군에 칼과 화살이라는 낙후한 무기로 대항하려다 보니 아마조네스의 희생이 클 수밖에 없었다. 원더우먼의 스승이자 이모인 ‘안티오페’도 전투 중 원더우먼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으며 결국 원더우먼이 바깥세상으로 나가 아레스에 맞서 싸우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16세기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Francisco de Orellana, 1511~1546)는 남아메리카의 커다란 강 유역을 탐사하던 중 피라타푸야에서 원주민 여성들의 공격을 받는다. 처음에는 오레야나의 이름을 따서 그 강을 오레야나 강(Orellana River)으로 불렀으나, 전투를 벌인 여전사 부족에서 아마존을 연상하여 훗날 아마존 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인국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여인들로만 이루어진 곳이다 보니 평화로운 이상향으로 묘사되는 편이다. 하지만 그곳의 여인들은 종족 보존과 평화 수호, 그리고 여인국이라는 정체성 유지를 위해 남성 못지않은 강인한 전투력과 잔인성을 가진 이들로 묘사되기도 한다. 특정한 시기에만 남자와 만나 관계를 갖는다거나, 여아가 태어나면 키우고 남아가 태어나면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그래서 만들어진다. 그것이 바로 아마조네스의 두 얼굴인 셈이다.
2. 미국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의 로고에 그려진
아마존 여전사의 화살(사진 출처 : 네이버)
3.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아 리스 장식을 만드는 데
쓰이는 감태나무
2. 생강나무속 식물의 무수정생식
  식물 세계에도 아마조네스를 꿈꾸는 족속, 아니 속(屬, genus)이 있다. 녹나무과의 생강나무속 식물 중 감태나무(Lindera glauca)와 뇌성목(Lindera angustifolia)이 그렇다. 이들은 수그루와의 수정 없이 암그루 혼자 결실하는 무수정생식(apomixis, 아포믹시스)으로 번식한다. 수정 없이 결실한다는 점에서는 단위결실(單爲結實, parthenocarpy)과 비슷하지만, 단위결실은 씨가 만들어지지 않는 데 비해 무수정생식은 씨가 만들어진다는 점이 다르다. 지구상의 현화식물 중 1% 미만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계통간 불균일한 분포를 보인다고 알려졌다.
  감태나무는 겨울에도 잎이 잘 떨어지지 않아 리스(wreath) 장식을 만드는 데 쓰인다. 이 감태나무의 무수정생식에 대한 연구를 보면 중국 같은 대륙의 내륙지역에서 자라는 감태나무는 암수가 다 있는 반면에 섬 지역인 일본에서는 암그루만 존재한다. 반도(半島)인 한국도 일본처럼 암그루만 존재한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섬이나 반도라는 고립된 환경에서 감태나무가 선택한 번식 전략으로 추정한다. 무수정생식은 자신과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후손을 양산하는 방식이므로 급작스러운 환경변화나 질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감태나무는 수그루 없이 암그루 혼자 번식하는 방법을 택했다.
  감태나무의 유사종인 뇌성목도 암그루 혼자 결실하는 무수정생식을 한다. 경기도 용인시의 한택식물원이나 서울특별시 홍릉수목원에 옮겨 심어진 뇌성목이 수꽃 없이 암꽃만으로 결실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백령도나 대청도 등지에 소수가 분포하는 뇌성목 역시 감태나무처럼 수그루에 대한 발견 기록이 국내에는 없다. 그들의 아마조네스는 이미 완성형이다.
4. 감태나무의 암꽃
(수꽃 없이도 결실하는 무수정생식을 한다)
5. 뇌성목의 암꽃
(수꽃 없이도 결실하는 무수정생식을 한다)
3. 초피나무속 식물의 무수정생식
  운향과의 초피나무속 식물 중에서도 무수정생식을 하는 종이 있다. 개산초(Zanthoxylum planispinum)와 왕초피나무(Zanthoxylum simulans)가 그렇다. 그들도 감태나무와 같은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개산초 역시 암수딴그루로 알려졌으나, 암꽃이 피는 암그루만 보이며 수꽃 없이 혼자서 잘 결실한다. 한때 서울특별시 홍릉수목원에서 자라던 개산초 암그루도 혼자 결실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국내 어디에서도 수꽃이 피는 수그루 개산초가 보이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개산초는 이미 그들만의 아마존을 건설한 것으로 추정된다.
6. 개산초
(전남 완도군)
7. 개산초의 암꽃
(수꽃 없이도 결실하는 무수정생식을 한다)
  제주도에 분포하는 왕초피나무는 암수를 모두 볼 수 있어 암수딴그루 체제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왕초피나무의 수그루는 암그루에 비해 매우 드문 편이고, 내륙의 수목원 등지에 옮겨 심어진 왕초피나무는 모두 암그루 혼자 결실하는 모습을 보인다. 서울특별시 홍릉수목원의 왕초피나무도 한 그루뿐이지만 매년 결실한다. 경기도 포천시 국립수목원에는 두 군데에 걸쳐 5그루의 왕초피나무가 심겨 있다. 그들 역시도 모두 암그루뿐인데도 열매를 잘 맺어놓아 노랑딱새의 먹이가 되어준다. 그러므로 왕초피나무는 아직 수그루가 야생에 남아 있긴 하지만 이미 수그루 없이 결실하는 무수정생식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지상에서 왕초피나무 수그루가 완전히 사라져서 그들만의 아마존을 완성하는 건 시간문제다.
  그런데 아직 남은 왕초피나무 수그루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도 있어 보인다. 중국에 분포하는 유사종인 Zanthoxylum bungeanum도 무수정생식을 하는데, 그들은 수꽃에 의해 수분이 되면 꽃가루가 암술머리에서 발아할 수 있고 꽃가루관이 2일 후에 난소벽까지 확장될 수 있으며, 약 5일 후에 난자 세포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 다만 수정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수분이 결실률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수분하지 않은 개체들의 무수정생식에 의한 결실률이 74.12%인 것에 비해 수분해 준 개체들의 무수정생식에 의한 결실률이 89.31%로 증가했다고 한다. 무수정생식을 하는 종이라 수분이 수정을 일으키지는 못하지만, ABA, IAA, GA3 및 JA에 대한 동화 경로를 활성화하는 신호로 작용하는 mRNA와 miRNA를 활성화하고, 이러한 호르몬 수치가 증가하면 15%가 넘는 결실률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결실률 증가에 이바지하는 것이 아직 남은 왕초피나무 수그루의 역할인 셈이다. 이런 점을 잘 이용한다면 특정 작물의 결실률 증가를 이끌어낼 수 있어 보인다.
8. 왕초피나무의 암꽃
(수꽃 없이도 결실하는 무수정생식을 한다)
9. 왕초피나무의 수꽃(수정은 못하지만
암꽃의 결실률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4. 성체제의 불완전성
  초피나무속 식물 중 초피나무는 완벽한 암수딴그루를 보이지만 산초나무는 개화 말기에 수꽃차례에 소수의 암꽃이 피었다가 결실하는 경우(subandroecy)가 드물게 관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초나무의 암수딴그루 성체제가 아직 불완전한 것이다. 산초나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암수딴그루로 되었는지는 같은 운향과의 쉬나무속 식물인 쉬나무(Euodia daniellii)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쉬나무의 성체제는 매우 특이하다. 수꽃만 피는 수그루가 있고, 수꽃이 피었다가 지고 난 뒤 암꽃이 피는 암수한그루가 따로 존재한다. 그중 암수한그루 개체는 다시 두 부류로 나뉜다. 수꽃이 많이 피었다 진 후 암꽃이 조금 피는 개체(훗날 완전한 수그루로 되는 개체)와 수꽃이 조금 피었다 진 후 암꽃이 많이 피는 개체(훗날 완전한 암그루로 되는 개체)가 그것이다. 앞서 말한 수꽃만 피는 수그루는 이미 완벽하게 수그루가 된 모습이고, 뒤에 말한 두 부류의 암수한그루는 아직은 덜 완벽한 수그루와 아직은 덜 완벽한 암그루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쉬나무가 아주 먼 훗날에 완벽한 암수딴그루로 진화할 예정인데, 지금은 그 과정 중에 있는 모습을 우리가 보기 때문에 불완전한 성체제로 관찰되는 것이다. 산초나무 수꽃차례에 드물게 소수의 암꽃이 결실하는 경우가 관찰되는 것도 99.9.....9%라는 완전성의 나머지인 0.0.....1%의 불완전성을 목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초피나무, 개산초, 왕초피나무, 그리고 감태나무는 완벽하게 암수딴그루로의 진화를 완료한 종이다. 이 중 초피나무는 현재 암수를 비슷한 비율로 유지하고 있으며, 감태나무와 개산초와 왕초피나무는 우리나라와 일본과 같은 환경에서 암그루 혼자 결실하는 무수정생식으로 바꾸었다. 그들 중 왕초피나무는 아직 수그루를 완전히 없애지 못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10. 산초나무의 수꽃
(개화 말기에 수꽃차례에 드물게 암꽃이 피어 결실한다고 한다)
11. 산초나무의 암꽃
12. 쉬나무의 수그루에 핀 수꽃(현재 완전한 수그루로 존재하는 개체)
13. 수꽃이 많이 피었다 진 후 암꽃이 조금 피어 열매가 달린
쉬나무(암수한그루지만 불완전한 수그루로 아주 먼 훗날 완전한 수그루로 될 것임)
14. 수꽃이 조금 피었다 진 후 암꽃이 많이 핀 쉬나무
(암수한그루지만 불완전한 암그루로 아주 먼 훗날 완전한
암그루로 될 것임)
5. 이해되지 않는 전략을 이해하기 위하여
  아마조네스를 꿈꾸는 식물들의 번식 전략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무수정생식은 유전적 다양성이 부족한 후손들을 양산한다는 점에서 급작스러운 환경변화나 질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외의 논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수정생식은 수정 없이 한 개체가 쉽게 집단을 이룰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이는 무수정생식이 지극히 낮은 유전적 다양성을 갖는다는 단점을 능가하는 장점일 수 있다고. 만약 현재의 유전자형이 환경 조건에 계속 적합하다면 제한된 유전적 다양성은 크게 제약받지 않을 수 있다고도 부언한다. 이는 섬이나 반도 같은 특정한 환경에서는 장단점이 다르게 평가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먼 미래를 내다볼 게 아니라 당장 눈앞의 유불리를 따져야 하는 문제라면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지금 바로 직면한 생존과 멸종의 기로에서 먼 미래를 내다보는 결정을 한다는 건 어리석은 일일 수 있다. 그때는 그 결정이 옳았을 것이다. 우리 조상의 선택이 지금 나의 성체제를 이루었는데, 현재의 환경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조상의 선택을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수정생식을 하기로 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수그루를 모두 제거했는데 이제 와 생존에 불리한 방식이라고 해서 다시 암수딴그루로 돌아가 수정에 의한 생식으로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들만의 아마조네스 건설이라는 아포믹시스의 성패는 아주 먼 훗날에 평가받겠지만 사실상 매 세대마다 평가받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생식에만 필요한 수그루를 과감히 자신들의 집단에서 배제하는 일은 매우 극적인 전략적 결단이었을 것이다.
  식물과 달리 사람은 종족 보존에 있어 남성이 꼭 필요하다. 얼마 전에 세간의 이목을 끈 사유리의 깜짝 출산에서도 남자는 필요 없었으나 정자만큼은 필요했기에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사회적인 문제만 아니라면 과학이 해결할 수도 있다. 2004년 4월 22일, 한일 양국은 ‘아빠 없는 쥐’의 탄생 소식을 공동 발표했다. 1996년에 태어난 최초의 복제양 둘리는 아빠는 없고 엄마만 둘이었다. 과학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신화라는 상상의 세계를 과학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현실로 만들어버린다. 반면에 자연은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마냥, 제멋대로 실험 중이다.
<참고자료>

김진석, 김태영. 2018. 한국의 나무. 돌베개.

Jeannette W, Christopher J. S, Eric J. B, Sarah P. O. 2008. THE DYNAMIC NATURE OF APOMIXIS IN THE ANGIOSPERMS. University of Chicago.

Nakamura, M.; Nanami, S.; Okuno, S.; Hirota, S.K.; Matsuo, A.; Suyama, Y.; Tokumoto, H.; Yoshihara, S.; Itoh, A. 2021. Genetic Diversity and Structure of Apomictic and Sexually Reproducing Lindera Species(Lauraceae) in Japan. Forests.

Xitong F, Yao M, Tuxi Y. Anzhi W. 2019. miRNA and mRNA studies reveal pollination activates hormonal signaling and increases fruit set in the apomictic tree Zanthoxylum bungeanum Maxim. Northwest Agriculture and Forestry University.

Yoko L. Dupont. 2002. Evolution of apomixis as a strategy of colonization in the dioecious species Lindera glauca (Lauraceae). The Society of Population Ecology and Springer-Verlag Tokyo.


[네이버 지식백과] 아마조네스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네이버 지식백과] 아마조네스 [Amazones] - 부족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 안성찬, 성현숙, 박규호, 이민수, 김형민)

[네이버 지식백과] 아마존 [Amazōn]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B%A7%88%EC%A1%B0%EB%84%A4%EC%8A%A4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B%A7%88%EC%A1%B4%EA%B0%95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838405&cid=43168&categoryId=43168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408612&cid=60335&categoryId=60335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30198&cid=50766&categoryId=50794

광릉숲보전센터
박사후연구원 김한결    전문위원 이동혁   임업연구사 조용찬
copyright(c). KOREA NATIONAL ARBORETU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