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거나 혹은 붉은 나무들 천지인 세상에 문득 회칠을 하고 서 있는 자작나무 수피에서 가을 하늘의 밀지(密旨)를 받아 적는다.
밤하늘 사선으로 흘러가던 달빛에 비춰 보면 몰락한 제국의 연대기를 낱낱이 기술하고, 액막이 굿판에서 사설을 풀어내던 무당의 주술도 빼곡하다가, 먼 옛날 석기시대 이전의 한 문명인이 별 무더기 하나둘씩 선을 그어 우주의 항로를 새겼을 자작나무 수피 사이 행간은 이미 넓다.
누렇게 퇴색하는 계절도 제 빛깔을 찾아가는 시간, 천마도장니* 속 푸른 말 울음소리 들리는지 또 한 겹 세월을 털어내고 가을 길을 여민다.
*천마도장니 : 국보 제27호, 천마총(天馬塚)에서 출토된 5세기 말의 마구장비(馬具裝備) 장신ㄱ화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