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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아버지와 화해한 산길
  • 입상자명 : 하상희
  • 입상회차 : 6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우리 가족이 동구청 뒷산에 올랐다. 나와 동생들은 짜증난다는 얼굴을 가득한 채 힘겹게 한 발 두 발 걸어올라갔다. 평소 산을 즐겨 오르시는 부모님만 활짝 핀 얼굴로 가벼운 발걸음 이시다.
꾸불꾸불 요리조리 가도 가도 산밖에 없었다. 오르막길에선 짜증내고 내리막길을 내려갈 땐 시원한 바람도 불어 기분이 좋았다.
'다다 다다' 뛰어서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무언가가 흐물흐물지나가는게 보였다. 가까이 가서보니 뱀이었다. 나뭇가지로 쿡쿡 찌르며 놀다가 다시 가족 곁으로 갔다.
오랜만에 산에 와서 그런지 기분이 좋았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가족과 떨어져서 뒤처지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아빠랑 단둘이 걷게 되었다. 은근슬쩍 짜증이 났다. 왜냐하면 아빠는 나와 있으면 짜증을 내신다. 나랑 있으면 성격차이 때문인지 아주 서로 보기만 하면 으렁대는 원수관계다. 나도 이젠 질려서 아빠가 무슨 말을 걸어오면 아예 "아~예~예" 해버린다. 이 정도면 무슨 아버지와 딸의 사이라 할 수 있을까? 완전 원수지 원수!
아버지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신다. 금요일이면 우리가 있는 울산으로 내려오신다. 내려와서부터가 또 문제다. 그냥 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회사 사람들을 만나 술을 드시거나 집에서 술을 드신다. 그리곤 지그시 우리들(나와 동생들)을 불러내신다. 우리는 그때마다 '또 시작이다.'라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긴 설교를 꺼내시기 때문이다.
'세상살이는 어렵다.'에 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내용은 끝도 없이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처음엔 다 우리에게 충고하는 거라 유심히 듣는다. 문제는 충고할 때 한 말을 계속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토요일 하루는 술 드시고 집에 들어와 우릴 부르시더니 아빠의 단점에 대해 얘기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쌓인 것도 많아서 다 쉼 없이 얘기했더니 다음날 또 아빠의 단점에 대해 얘기 해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그러나보다.'하며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속이 상했던 모양인지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계속 물어보시는데 알고 보니 술 먹고 기억이 안 나신다는 것이다.
요즘은 아빠가 술 먹고 들어오시면 방문을 잠그고 창문도 잠그고 종이에다가 '공부중입니다. 말 걸지도 말고 문도 두드리지 마세요. 추신 : 아빠 술 얼른 깨세요!" 라고 붙여 놓는다. 혹시나 문 두드리며 '들어가도 되냐?'고 말씀하시지만 난 차갑게 '안돼요, 절대 안돼요.'라고 하지만 잠시후에 다시 똑똑 문을 두드린신다. 그러다가 엄마가 짜증났는지 말려서 주무시게 하시면 그때서야 방에 들어가 주무시는아버지다.
서울에서 우리 때문에 고생하시는 아버지이신데 차갑게 대하는 데에 죄책감도 느끼지만 어쩔수 있는가? 술버릇 중독되면 짜증나는데, 나는 어쩔 도리가 없다.
오늘도 아침에 산을 올라오는데 많이 망설였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산행이라 사실 주저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데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온다. 내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슴이 답답할때 산을 찾는 걸까?
산길을 걸어가다 그래도 서먹함은 어쩔 수가 없었는지 아빠가 먼저 말을 걸어 오셨다.
"상희야, 산에 오니깐 얼마나 좋냐..."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결국은 성적 얘기 나오고 사고치는 이야기, 늘 잔소리할 때마다 늘어놓은 푸념들을 꺼내 놓으셨다. "왜 너는 아빠 마음도 몰라주고 맨~날 사고만 치니?" 하시며 나에게 충고와 조언을 해주셨다.
나는 원래 그런 조언, 충고를 듣으면 잔소리로밖에 안 들려서 싫어하지만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아빠와 함께 걷는 이 길이 왠지 싫지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앞으로 잘하자.'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 내 마음이 신기하기도 했다.
산의 그 무엇이 나와 아빠의 거리를 좁혀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때까지 아빠에게 "잘못했습니다. 다음부턴 안 하겠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늘 말로만 내 잘못의 모든 것을 해결해 왔었다. 아빠도 항상 그러셨다.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좀 보여 봐라." 하시면서 날 꾸중해 오셨다. 나는 그때마다 앞으론 잘해야지 하면서도 어느새 마음은 노는 길로 향해 있었다. 마음을 바로 잡고 해야겟다고 하면서도 잘 안됐다.
아빠와 정말로 진실한 말을 나눈 진정한 장소가 없었던 걸까? 이리저리 쫓기고 짜증이 쌓인 상태에서 서로 대화했으니 아빠와 나의 오해가 계속 쌓인 것은 아닐가? 산은 나를 조금씩 정화시켜 주고 있었다. 산이 횡설수설하고 어지럽기만 한 내 마음을 깨끗이 청소해 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산에 오길 정말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어기 엄마와 동생들이 웃으며 걸어가고 있다. 산은 우리를 그 푸른 가슴으로 다독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길을 내려왔다. 오랜만에 맛보는 시원함이다. 그동안 내 마음 속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미움들이 바람곁에 밀려 가는 기분이다.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산의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다.
지금은 공부 속에서 힘들고 고달프지만 그 산길을 떠올리며 위안을 삼고 싶다. 산길을 참고 걸어가 신비로운 기쁨을 만났듯이 참고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 성공의 길이란 걸 나는 어렴풋하게 알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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