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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산(山)만 했던 여자의 두 번째 생일
  • 입상자명 : 이유진
  • 입상회차 : 10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160cm, 87kg, 허리둘레 36인치. 스무 살의 여성이라 하기에는 쉽게 믿기지 않고 경악스럽기 까지 한 이 헤비급 신체 사이즈의 주인공은 바로 2년 전의 나 자신이다. 아니, '자신'이라는 자아조차 위태롭게 흔들리던, 그저 남들에게는 소위 비만인 사람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돼지' 혹은 '뚱녀'라는 별명으로 오르내리며 그들의 웃음거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그때, 프리지아처럼 싱그럽고 산듯해야 할 이십 대의 첫 문턱에서 꽃잎은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보면 깨끗한 흰색 도복을 입고 카랑카랑한 목청으로 기합을 지르고 있는 초등학생 시절의 내가 있다. 그렇다. 나는 처음부터 뚱뜡한 체질이 아니었다. 오히려 또래보다 건강하고 운동을 잘해서 태권도 선수로도 활동했었다.
뭐든 뛰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던 내게 운동은 최고의 취미이자 특기였다. 그렇게 태권도로 시작한 운동에 대한 집념은 고학년이 되고 중 ·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그치지 않았고 여느 여자 친구들이 피아노나 발레, 미용을 배울 때 나는 검도, 유도, 복싱을 막론하고 웬만한 국내 무술이란 무술은 다 해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운동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다행히도 보수적이지 않으신 부모님 덕에 일찍이 진로를 굳히고 고교 시절, 다니고 있는 체육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범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직접 용돈을 벌기도 했다. 아무런 걸림돌이 없던 나날들에 조금씩 균열이 벌어지기 시작한 건 아빠의 사업이 부도나고부터였다. 그럼에도 식구들 모두가 숨죽여 힘든 내색 하나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폭풍 전야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일순간 누리고 있던 것들이 파도에 휩쓸린 듯 손아귀 안에서 다 빠져나가고 등 붙이고 누울 곳조차 불안해지자 켜켜이 쌓아져 억누르고 있던 고통들이 좌절과 함께 끝없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하루라도 집안에 큰 소리가 안 나는 날이 없었고, 서로 간의 불화가 엉킨 실처럼 꼬일 대로 꼬여갔다. 그리고 경솔하게도 그런 상황을 장녀답게 참아내지 못한 내 어리석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병들게 했다.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가상의 즐거움에게 손 내밀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PC방에 들러 게임이나 채팅 따위를 했고 스트레스를 풀고자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먹어댔다. 급기야 친구들을 만나거나 번화가로 외출을 하는 것도 피하고 있었다. 고작해야 동네 슈퍼나 비디오 가게에 들락거릴 뿐 일상이 통째로 추락하고 있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멀뚱히 창밖을 내다보다 문득 몸무게를 재보고 싶단 생각에 구석에 밀어뒀던 체중계를 꺼냈다. 잔인하게도 떡하니 눈앞에 버티고 있는 90kg 가까이의 숫자.
알고 있었지만 단지 외면했던 것이 달랑 숫자로 환산되자 그 몸무게만큼이나 마음이 무겁고 서러워서 펑펑 울어버렸다. 한참 뒤 비는 그쳤고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지만 우울증이 찾아 들었다. 그래서 나늘 달래보고자 그때부터 우리 동네 뒤편에 있는 산에 올랐다. 가장 높은 곳에서 내 자신과 마주보고 싶었기 때문에.
어릴 적 동화 속의 헨젤과 그레텔에서 나올 법한 오솔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꽤 운치가 있는 가로등 옆에 촉감이 좋은 나무 벤치가 놓여져 있다. 나는 늘 이곳에 앉아 오고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곤충의 알처럼 다닥다닥 붙은 숨 막히는 건물들 사방을 벗어나 사방이 탁 트인 이곳에 오면, 그래서 저녁 늦은 시간쯤에 빠르게 내달리는 차들의 백라이트와 번쩍이는 간판들, 교회 지붕 위 붉은 십자가 같은 것이 수채화처럼 어우러진 야경을 구경하다 보면 왠지 내일 아침에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선풍기와는 판이하게 다른 자연의 바람은 마치 나무가 불어주는 입김 같아서 혼자여도 외롭지 않게 느껴지고 집으로 내려올 때마다 무언가 짐을 풀어 놓은 듯 가벼운 기분이 들었다. 딱딱해진 마음이 한꺼번에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변화는 아주 느릿하게 찾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습관처럼 산을 찾던 나는 우연히 벤치 다리 밑에 삐죽 솟은 연보라색의 풀꽃을 발견했다. 손톱보다 작은 앙증맞은 크기에 줄기도 가느다랗고 연약했지만 척박한 조건에서 피어난 꽃이라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색채를 가졌다. 비록 향기는 없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극적이 매력이 넘친다. 내가 처한 상황 탓에 더 예뻐 보였던 걸까. 이보다 더 완벽한 피사체는 없겠다 싶어 다음날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렌즈 속의 산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두르거나 구속하지 않고 소리도 없이 인생을 가르친다. 더 이상 위인들이 남긴 거창한 명언이 아니라 누구나 일상에 지치고 좌절할 때 산을 찾으면 횝고할 수 있는 푸른색 에너지를 수혈 받을수 있다. 그동안은 그저 등산하는 곳 내지는 나무가 많고 공기가 맑은 곳이라고만 하고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는데 우울증으로 망가져가던 내게 산은 희망을 보여줬다. 그렇게 얻은 새로운 날들 동안 살을 빼기 위해 작정하고 등산을 시작했고 그 수고에 대한 보상처럼 운동복이 점점 헐렁해지고 있었다. 폼으로 사다 놓기만 한 카메라를 스는 일도 잦아졌다. 숲속에서 찾을 수 있는 소소한 볼거를 찍기 위해서다. 새로운 취미가 생긴 것 같아 행복했다.
많은 사람들이 헬스장이나 고급 시설에서의 다이어트를 더 선호하지만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 속에 담긴 특별함을 믿고 싶었다. 조금 엉뚱한 생각을 보태자면 사람이 태어나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어떠한 섭리처럼 직접 흙을 밟으며 걷는 것이 사람에겐 가장 좋지 않을까 한다. 정신적인 면에서만 봐도 산속의 숲은 굉장한 치유력이 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스트레스로 인한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단 거였는데 컴퓨터나 MP3에 의존했지만 당장만 해소될 뿐 요소만으로 충분히 쉼표가 되어준다. 나뭇잎이 운반하는 청량한 공기, 막 생겨난 듯 보여도 나름의 질서 아래 공존하는 이름 모를 새와 꽃, 클래식처럼 여유롱룬 벌레우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야생 그대로의 풍경에서 버릴 것 하나 없이 모두 아름답고 신선한데 눈과 귀가 즐겁지 않을 수 없다. 눈 뜨고 일어나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신기술들의 홍수속에서, 잠들기 직전가지 휴대전화를 손에 척 붙이고 있는 지금의 사람들이 고유의 정서나 감수성을 전자파 스트레스로부터 갉아 먹히고 있을 때 숲은 그것들을 박멸해주는 살충제 셈이다. 진정한 오감만족이란 건 결국 이런 걸 말하는게 아닐까?
그렇게 등산을 통해 산과 소통하고 내 자신과 치열하게 싸운 지 다시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내 하루는 24시간이 모자잘 만큼 바빠졌다. 무려 30kg을 감량하고 새로운 직장을 얻고, 어학 자격증 공부와 기타레슨, 그러고 디카 동호회와 MTB동호회에도 들었다. 정말이지 말 그대로 살맛나는 세상을 살고 있다. 비록 예전에 비해 산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고 빌딩 숲 가운데서 북적이며 지내고 있지만 가끔 쉼표가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산에 오른다. 감정을 다스리는 데 미숙했고 절망적이었던 스무 살에게 가르쳐 줬던 그 자연의 철학은 몇 번을 곱씹어도 부족할 만큼 소중하고 값지다.
하늘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산. 그 가장 높은 곳에서 버리고 싶은 생각들을 하나씩 떨어뜨리고 내려왔었다. 그렇게 높은 데도 거만하지 않고 겸손한 이유는 많은 것을 베풀기 때문이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좋다. 조금 느리게 걸어도 좋고 바보 같아도 남보다 부족해도 모두 좋다. 그저 산에서 약간의 시간을 내어주고 기다리면 된다. 지옥 같았던 지난 시간, 구원이 되어준 짙푸른 기적. 남들이 유별나다 오버한다 놀려대도 어떠하리. 빛나는 청춘을 새로 일구기 시작한 지금이 바로 내가 다시 태어난 순간이다.
요즘 처음 만난 이들에게 늘 똑같은 질문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혹시 산 좋아하세요?"
산(山)만 했던 여자.
그렇게 두 번재 생일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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