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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산을 사랑한 죄
  • 입상자명 : 지홍석
  • 입상회차 : 10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발암산에 가는 길이다. 영산휴게서에 들렀다. 주차장이 꽉 찬 옥수수처럼 빼곡하다. 봄맞이 여행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주말이다.
휴게소 식당으로 들어선다. 생각했던 것보다 한산하다. 된장찌개 하나를 주문하고 식당 종업원에게 말을 건네 본다.
"관광 성수기인데 장사가 왜 이리 안 되죠?"
노려보듯 눈매가 곱지 않다. 그러더니 이내 체념한 듯 한숨부터 내 쉰다.
"저기를 보세요. 저러는데 장사가 되겠어요?"
벤치 부근에 몇 무리의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다.
저마다 일회용 밥그릇과 국 그릇, 수저를 쥐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밥과 국을 열심히 퍼주고 있다.
화장실에는 기다리는 줄이 삼십여 미터가 넘는다. 줄도 몇 개나 된다. 남자 화장실까지 와서 진을 치고 있는 수치심과 예의도 잊은 듯하다. 무심코 들어서던 남자들이 도리어 멈칫한다.
화장실을 잘못 들어선 줄 착각한 모양이다.
휴게소 주변 잔디밭과 공터에 사람들이 넘친다. 아침인 데도 벌서 술에 취한 모습도 보인다.
3월 하순부터 6월까지 주말에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가끔 장소를 선점하려는 싸움까지 벌어진다. 인터넷 덕분으로 등산동회가 활성화 된 후 이런 일이 부쩍 늘었다.
새로 개발된 발암산과 제석봉 등산로가 아주 쾌적하다. 한려해상 다도해의 해변과 바다를 감상할 수 있어 좋다. 송림이 우거져 있어 삼림욕에 안성맞춤이다. 등산의 묘미도 각별하다. 군데군데의 바위 전망대에 서면 가슴이 탁 트인다. 그야말로 산해절승(山海絶勝)이다.
4시간여 등산을 마치고 하산을 한다. 조용하던 마을에는 여러 대의 산악회 관광버스가 서 있다. 버스 옆 보리밭에는 플라스틱 의자와 간이 식탁이 놓여 있고 음식물이 끌고 있다 남녀가 뒤엉킨 그들의얼굴에 때 아닌 붉은 단풍이 번들거린다.
거림낌 없는 목소리로 건배!건배를 외친다. 무엇을 위한 건배란 말인가. 사람의 무지에 짓밟히고 고성에 놀란 보리가 파르르 떨고 있다. 밭일을 하는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불쾌함이 가득하다.
작년 태백산에 겨울 등산을 갔을 때다. 차가운 겨울바람과 영하의 기온에 온몸이 녹초가 되어 내려왔다. 지친 마음에 버스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제일 위쪽 주차장은 테마여행이나 기차여행을 온 관광버스로 꽉 차 있었다. 제2,3,4 주차장은 자가용으로 가득했다.
우리가 타고 온 산악회버스는 매표소를 통과해 40여 분 더 내려가서야 찾을 수 있었다.
분통이 터졌다. 많은 인원이 타는 관광버스 주차장을 왜 제일 불편하고 외진 곳에다 만들었을까. 이제서야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산악회관광버스를 이용하는 인원이 천여 명이 넘는 데도 밥을 사 먹는 사람은 십여 명이 채 안되는 것 같다.
비싼 임대료를 주고 세금을 내고 식당을 운영하는 휴게소와 상가 옆에서 버젓이 자신들이 들고 온 밥과 국으로 음식물 잔치를 벌인다. 술판을 벌이며 큰 소리로 고함치고, 취하면 배설물도 아무데서나 처리한다.
개업한 집에 가서 장사 잘 되라고 팔아 주는게 아니라 사들고 간 음식만 실컷 먹고 쓰레기와 찌꺼기만 버린 격이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여행을 와서 돈을 쓰지 않고 그들 나라에서 가져온 음식들만 먹고 가버린다면 얼마나 야속할가.
음식 맛이 업쇼거나 지방 특산품의 가격이 비싼 게 원일일 수 있다. 식사와 술를 제공하지 않으면 사람이 모이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한몫을 했을 수도 있다.
공룡 같은 대형 마트에서 술과 음식물을 사서 여행을 떠다는게 유행처럼 되었다. 그 덕택에 휴게소와 관광지는 쓰레기 전쟁 중이다. 음식물 쓰레기가 하루에 11톤이 넘게 나오는 휴게소도 있다고 한다.
경비 절약을 위해 값싸게 음식물들을 준비하는게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당한 소비는 경제를 활성화시킨다. 특산물을 구입하는 것도 경기 활성화의 한 방법이다. 그래야 그들도 파생되는 경제적 효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각종 엑스포 행사나 국제행사가 많이 예정되어 있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점점 많아진다. 무질서와 취기가 난무하는 휴게소와 관광지의 모습을 본다면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안내 산악회 등반대장을 했던 한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요새 산악회 회장들 전부 주방장으로 취직했어!"
요즘은 산악회 회장이 국과 밥 심부름을 하지 않으면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는 것을 빗대는 말이다. 나도 목하 고민중이다. 삼십여 년 간 산을 사랑한 죄로 주방장이 되어야 할까. 몇 개 월간 밀린 사무실 임대료가 지금 나를 유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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