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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숲에 들다
  • 입상자명 : 이영숙
  • 입상회차 : 19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저만치서 숲이 다가선다. 나무의 군락이 한 덩이가 되어 녹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하다. 세상은 온통 푸른 물결로 일렁이자 녹음에 젖은 눈이 맑게 드인다. 산새의 지저귐과 매미, 풀벌레 소리가 녹색의 세상을 연신 들었다 놨다 한다. 한줄기 바람이 숲을 파고든다. 그 바람에 이끌리어 숲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누가 그랬던가? ' 그곳에 산이 있어서 오른다고...'
햇살이 솔잎에 짙게 드리워져 날카롭게 빛나더니, 어느 순간에 연녹색 단풍나무 잎 위로 건너가 통통 튀어 오른다. 햇살 받은 솔잎과 단풍잎이 눈부신 광채를 쏟아낸다. 미풍이 이파리들에게 다가와 속살거리고, 녹음과 신록을 한데 어울린다.
푸른 동질감으로 숲은 조화로우면서도, 녹음과 신록이 연출하는 미묘한 차이 때문에 더욱 다채롭게 보인다.
밝은 햇살 속에서도 마음은 늘 어두운 그늘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살아오면서 상대방이 쏟아 낸 말에 찔려 마음의 깊은 상처를 입고 끙끙 앓은 때가 많다.
가끔 과장과 허영으로 포장된 삶에게 짓눌리기도 한다. 또한 사소한 이해관계로 말미암아 무시당하거나 멸시 당하기도 한다.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만 해주면 되는 것을 무슨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라도 한 듯 각자의 고집만 내세운다. 감정의 상처가 인고의 수위를 최고점으로 끌어 올릴 때, 틀어진 마음은 더욱더 멀리 달아나 버린다.
숲속의 나무들이 울컥거리며 다가와 나의 마음을 푸르게 물들인다. 발길을 타고 전해져 오는 산뜻한 기운이 어느새 나와 숲을 하나로 이어준다. 숲이 한들거리고, 숲이 출렁일 때 나도 출렁인다. 짙은 숲의 그늘 사이로 살며서 찾아든 햇살이 부드럽다.
숲은 그늘과 빛이 지어내는 속살거림에 한데 어우러져 균형이란 조화로움을 이룬다. 음양(陰陽)의 대비를 보여주는 숲은 조화로운 신록의 세상을 열어낸다.
얼마를 걸어 나가자, 산의 허리가 한적한 오솔길을 걸치고 있다. 정글 속의 그 것처럼 울창한 나무들이 녹색 물을 뚝뚝 흘리며 둔감한 오감을 일깨우기 시작한다. 계곡의 싱그러운 기운과 강에서 몰려오는 미풍이 서로 어우러져 감미로운 바람의 향연을 온 사방에 퍼뜨려 놓는다. 계곡의 말간 물은 실타래처럼 풀어져 넓은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낙동강으로 달려간다.
한편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강변을 낀 산이 제 모습을 강물에 드리운다. 거울 같은 강물은 머문듯 하늘과 비행하는 새들을 그의 넓은 가슴에 담아낸다. 온전한 수용이란 잠잠한 모습 속에 평온하게 깃드는 것이다. 어는덧 상쾌함이 폐부 깊숙이 파고든다. 가뿐해진 기운이 모든 시름을 잊게 해준다. 삶의 찌꺼기는 정화되어 순백의 무상무념으로 흘러가 공의 세계로 이끄는 것 같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전신이 홀가분하다. 신선이란 바로 녹음 속을 거니는 내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져본다.
숲이 숨바꼭질하듯 녹음으로 하늘을 가리더니 어느 순간 푸른 하늘을 열어 보인다. 무한 천공이다. 장미 곷송이처럼 산은 여러 겹으로 둘러싸여 있다. 갈키를 흩날리며 내닫는 흑마처럼 산의 산의 능선들이 가마득히 겹겹이 포개져 사방천지로 뻗어 나간다. 는개 같은 이내가 산등성이를 따라 아득히 퍼져 나간다. 저 멀리 동아줄처럼 이어진 능선이 한 겹 한 겹 허물을 벗을 때마다 마을과 마을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산등성을 끼고 돌아 나가는 소박한 마을들이 정겹다. 가까이 내려다보이는 마을의 고즈넉함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끊임없이 싱그러운 색채로 천지를 도배한 숲이 사뭇 싱그러움을 뿜어낸다. 온갖 나무들이 천변만화로 다가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둡게 닫힌 마음을 한 겹 한겹 열어젖힌다.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싸리나무, 뽕나무, 아카시아나무, 낙엽송 등이 서로 어울려 있는 모습이 다정스럽다. 수많은 수종들이 각기 다름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서로 보듬어 안으며 쑥쑥 자란다. 나름 자신에게 주어진 그 역량만큼 살아가는 모습이다.
나무는 모두 불평불만을 모른 채 그저 무성한 생명력으로 몸피를 늘려간다. 또한 자기 분수대로 살아가며 침묵할 줄을 알고, 때로는 감미로운 바람에 서로 가벼운 속살거림으로 생명의 나래를 펼친다. 우리 사람도 저 나무처럼 안분지족하는 삶을 꾸려나간다면 엇갈린 감정은 생길 수가 없으리라. 때때로 흩어졌던 상한 마음을 풀고, 서로 허심탄회가 어울려 살아갈 수는 없을까? 푸른 숲속의 나무가 싱그럽게 생명의 물을 길어 올리니 해맑은 빛이 찾아들어 사위를 조화로운 화합의 장으로 어루만진다.
나무들이 제 깜냥대로 터를 잡아 서로 군락을 지어 어울려 있는 모습이 멋스럽다. 교목은 교목대로 높게 자라면서도 작은 나무를 무시하지 않는다. 관목은 관목대로 자기 운명대로 자라되 큰 나무를 부러워하는 일이 없다. 누구 하나 튀어 나와 키를 높이거나 옆으로 눌러버리지 않는다. 각자의 모습 그대로 어깨를 걸고 산다.
어울림과 조화로움이 깃들어 있기에 산은 모나지 않고 둥글다. 숲 역시 산을 닮아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을 지어낸다. 이렇듯 숲은 서로 발맞추어 더불어 살아가는 균형의 '美'를 가지고 있다. 나무의 지혜는 이렇듯 숲을 생명력으로 가득채워 희망으로 나아가는 삶의 길을 펼친다. 삶의 아름다움은 모가 나지 않은 숲이 지어놓은 둥그스름한 산의 형체를 닮고자 하는 것에 있다. 둥근 산이 이래저래 어설픈 마음을 둥글게 보듬어 준다.
저 멀리 능선 위로 노을이 밀려들자, 숲속엔 땅거미가 드리워진다. 이글거리던 해님이 서산마루에 걸리면서 황홀한 빛으로 부활한다. 하루의 소멸을 이한 마지막 눈부심이다. 이때 아쉬움에 몸부림이라도 치듯 자글자글 타들어 가던 붉은 바퀴는 때를 거역하지 못한 채 지상의 빛을 서서히 거두어들인다. 소탈한 마음으로 삶 속에 스며들어야 할 때인가 보다. 옅은 어둠이 숲을 떠나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나의 발걸음을 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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