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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수목원소식지 Webzine

 탐방스토리
6 2014  탐방 스토리
신현탁 / 산림자원보전과 임업연구사, 허태임,윤정원,김상준/산림자원보존과 석사후연구원
  • DMZ편지 보랏빛 꽃 속에서 숨어 있는 오월 유월
    • 벌

      써 DMZ 숲 그늘이 도톰해졌습니다. 여름으로 치닫고 있다는 뜻이지요. 지난달만 해도 바람꽃속 식물들이 저마다 하얀 꽃을 내밀더니 오월 들어 DMZ식물원 주변에는 보랏빛 꽃들이 잔치를 벌인 듯 합니다.

      처녀치마(Heloniopsis koreana), 백합과

      ▶ 2014. 05. 10. DMZ식물원 주변
      꽃대는 한 뼘에서 두 뼘(10-30cm)까지 자라고, 방석처럼 낮게 깔려 퍼지는 잎이 눈에 띕니다. 꽃은 대개 이른 봄에 피지만, 해발고도 700m 안팎의 DMZ식물원 인근에는 5월 초인데도 치맛자락 펼치고 있습니다. 연보랏빛 꽃은 3개~10개가 다발처럼 모여 달리는데, 이름처럼 어여쁜 처녀의 치맛자락 같습니다. 꽃이 지고 나서 여무는 열매는 삭과로 3개의 능선이 있고, 다 익으면 벌어집니다. 그 안에 든 종자는 선형으로 길이가 5mm 남짓 되고 씨앗의 양 끝이 좁습니다. 처녀치마속(Heloniopsis) 식물은 전 세계적으로 6종이 정명으로 보고되어 있고, 그 중 처녀치마(H. koreana)와 숙은처녀치마(H. tubiflora) 두 종이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The plant list, 2013). 또한, 국내에서는 흰처녀치마(H. orientalis var. flavida)의 실체를 인정하기도 합니다. 처녀치마는 ‘koreana’ 라는 종소명에서 알 수 있듯이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특산식물입니다.

      당개지치(Brachybotrys paridiformis), 지치과

      ▶ 2014. 05. 10. DMZ식물원 주변
      전 세계적으로 1속 1종 식물인 당개지치(B. paridiformis)입니다. 5~7개의 어긋나는 잎은 잎자루가 짧은데 마치 손바닥 으로 허공을 받쳐 든 것처럼 보입니다. 원줄기 표면에는 자잘하게 흰 털이 나 있습니다. 5월 중순 DMZ식물원 인근 계곡부에 피어 난 보랏빛 꽃은 5~7개가 줄기 끝에 모여 달리는데, 보라색 등을 조롱조롱 아래로 매단 것처럼 보입니다. 숲속에서 당개지치 꽃을 발견하면 문득 걸음을 멈추고 손가락으로 꽃을 건드려 보고 싶은 충동에 빠질지 모릅니다. 그러면 보랏빛 종소리가 귀를 울릴 것도 같거든요. 꽃받침은 5개로 깊이 갈라지며 꽃받침 낱장은 뾰족한 선형이고 털이 나 있습니다. 암술대는 1개로 길게 꽃부리 밖으로 나와 있고, 5개의 수술은 암술보다 짧습니다. 열매가 익을 무렵 꽃대는 밑으로 처지게 됩니다.

      미치광이풀(Scopolia japonica), 가지과

       ▶ 2014. 05. 15. DMZ식물원 주변
      북한에서는 독뿌리풀이라고 부릅니다. 땅 속 줄기가 옆으로 뻗는 덕에 개울가에서 무더기로 피어나는 미치광이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식물전체에 털이 없으며 어긋나며 달리는 잎은 자루가 있고, 타원상 달걀 모양인데, 손바닥 정도의 크기로 자랍니다. 잎겨드랑이에 1개씩 매달린 종모양의 검은자주색 꽃은 아래로 처지며, 수술과 마찬가지로 5개인 꽃받침은 녹색으로 불규칙하게 갈라집니다. 꽃받침 속에서 영그는 삭과는 원형이고, 강낭콩 모양의 종자는 도드라진 그물무늬를 가집니다. 소가 먹으면 미쳐 날뛴다는 이유로 ‘미치광이풀’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도 하는데 미치광이풀은 식물체보다도 성분과 관련된 이야깃거리가 많습니다. 실제 미치광이풀 뿌리와 잎의 알카로이드(alkaloid) 성분은 추출과정에서 아트로핀(atropine)으로 변하는데, 이 아트로핀이 의약품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안과에서 망막을 검사할 때 동공을 확장하는 데 쓰거나 부교감신경 자극을 완화하는 데 사용합니다. 또 다른 성분인 스코포린(scopolin)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예로부터 신경을 안정시키거나 진통제로 쓰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분들로 만든 유명한 멀미약인 ‘키미테’를 붙이고 나서 눈을 비볐다가 동공이 커지는 경험, 한 번쯤 해보았겠죠. 진정작용과 흥분작용을 하는 성분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미치광이풀은 법정보호종일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에 따른 자생지 소실이 염려되는 북방계식물입니다. DMZ 식물원 근처에서 쉬이 만나는 이 종을 우리는 눈 여겨 보고 있습니다.

      복주머니란(Cypripedium macranthos), 난초과

      ▶ 2014. 05. 25. DMZ식물원 주변
      희귀식물로 보호받고 있는 복주머니란이 DMZ식물원 건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무럭무럭 자생하고 있습니다. 오월 중순 에는 그 이름 그대로 복주머니 단 듯 탐스러운 꽃을 피웠습니다. 사진에 담으려고 다가갔더니 달리 불리는 이름인, ‘개불알’도 생각나 입가에 웃음이 감돌았습니다. 어긋나게 달리는 3~5개의 잎은 타원형이고, 털이 약간 있습니다. 5월에 접어들면 피기 시작하는 꽃은 원줄기 끝에 1개씩 달리는데, 연한 홍자색 꽃이 넓적한 초록 잎사귀와 어우러져 매우 고매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나, 남획으로 인해 개체수가 매우 적습니다. 이곳 주민들이 가꾸는 마당의 꽃밭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데, 자생지에서 무단으로 옮겨온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DMZ식물원에서는 복주머니란을 조용히 지켰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꽃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보호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DMZ식물원 인근 복주머니란의 자생지에 대한 보고는 추가적으로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5월의 맑고 훈훈한 바람이 마음 설레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 유월에는 DMZ 안의 식물들은 더욱 왕성하게 꽃을 피우고 잎사귀 끝으로 더욱 힘차게 물을 끌어올리겠지요. 간혹 먼 데서 포성이 들려도, 곳곳이 위험한 지뢰 매설 지역임에도 이곳 식물들은 오래 전부터 그래왔듯이 꿋꿋하기만 합니다. DMZ식물원과 이 주변 숲들이 생명을 어떻게 키워나가는지 소식 또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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