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바짝 쫓아오는 차가운 바람에 등을 돌린 채 초겨울 휑한 길을 걷는다. 겨울의 바람을 따돌리는 일이 쉽지 않다. 바람이 시간을 앞서고 나를 앞서 성큼 나가버리는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주변 풍경은 겨울이 된다. 어느새 겨울의 중심에 발을 디디고 서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완연한 겨울. 올해는 겨울이 오는 속도가 더디다. 우리가 가을과 완벽하게 이별할 수 있도록 조금의 시간을 가을에게 내어주고 햇살에도 양보하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올해 육림호의 12월은 따뜻하고 포근하다. 육림호 가는 길. 자신을 모두 내보인 나무들과 따스한 공기와 포근한 바람만큼 나 또한 가벼워졌다.
육림호를 한품에 안고 있는 통나무집 한 채. 육림호 또한 그를 안는다. 육림호에 앉아 버린 통나무집은 나무에 깊이 박혀 뺄 수 없는 기다란 못처럼 자연스러워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통나무집에서 바라보는 육림호는 사각프레임 안의 어느 한 공간을 바라보는 것처럼 공간이 제한된다. 하지만 대신 한 손에는 따뜻한 커피가 들려져 있으며, 쓸쓸하다가도 평화로운 기운이 나무 벤치 위로 털썩 걸터앉은 몸을 타고 흐른다. 그것이 따뜻한 커피 때문인지 통나무집에서 바라보는 육림호의 풍경 때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잔잔한 육림호를 배경으로 차 한 잔, 커피 한 잔이 함께 한다면 그만큼 멋진 겨울이 있을까. 커피가 있는 풍경. 달고 씁쓸하고 시큼하고 순수한 커피의 맛만큼 육림호의 겨울도 어둡다가도 평화롭고 달콤하다가도 자극적이다. 다가오는 육림호의 겨울, 통나무집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은 어떨까. 그 순간만큼은 신선놀음이 아닐 수 없다.
벚꽃이 만발했던 자리, 철쭉이 꽃을 피웠던 자리, 단풍이 가득했던 자리, 펑펑 내리는 눈꽃송이가 눈앞을 가리는 푸르른 육림호수. 계절은 지나도 그곳에 그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추억이 되고 기억으로 남아 그 자리에 닿기만 해도 바로 떠올릴 수 있도록.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인 육림호 곳곳에는 매년 변함없이 벚꽃이 만개하고 철쭉이 피고 지며 단풍이 낙엽진다. 그리고 변함이 없기에 시간이 지나도 그를 기억하고 있다. 잎사귀가 모두 떨어져 아무것도 남지 않은 어느 가지에는 벚꽃이 달린 적이 있었으며 바닥에 떨어진 낙엽의 위로는 단풍이 멋스러웠던 가을이 지났다는 사실. 그 자리 그곳에서육림호를 추억한다. 봄을 추억하며 여름을 기다리고 여름을 추억하며 가을을 기다린다. 이제 지나가는 가을의 단풍을 추억하며 겨울을 기다릴 것이다. 한 발만 더 다가오면 겨울일까. 며칠만 더 지나면 완연한 겨울이 될까. 육림호의 겨울을 기다리며 2011년의 봄을, 여름을, 가을을 추억해 본다. 그 추억으로 이번 겨울이 계속 따뜻하기를. 올 한해를 따뜻하게 마무리할 수 있기를. 아직 내리지 않은 눈송이에 고이 담아 마음속에 달아 두고 다시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