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고유의 전통 정원에서 만나는 수많은 나무는 나름대로의 사연을 갖고 있다. 이번 12월 웹진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고서(古書), 옛 그림 등에 기록된 관련 내용들을 찾아 다양한 방법으로 전통 정원에 심겨진 나무를 소개하고자 한다.

궁궐에는 회화나무[槐]와 같은 상징적 수목에서부터 경관 혹은 관상을 목적으로 한 영산홍[映山紅], 모란[牧丹]과 같은 화관목과 원추리[萱], 옥잠화 같은 초화류를 식재하였고, 살구나무[杏], 앵두나무[櫻桃], 매화나무[梅], 음나무[刺桐] 등은 식용 혹은 약용 목적으로, 밤나무[栗]는 위패 제작, 뽕나무[桑]는 양잠, 쉬나무는 등잔불 기름, 황벽나무는 염료, 약재, 살충제 등으로 쓰기 위한 실용적 목적으로 식재하였다.
회화나무는 한자로 괴(槐)라 표기되는데, 괴목은 느티나무를 의미하기도 하여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본디 회화나무는 중국이 원산인 나무라 중국에서 괴는 회화나무를 의미하였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느티나무와 혼용했을 것이다. 회화나무가 꽃피는 음력 7월에 과거를 보거나 회화나무 숲 아래에서 책을 거래하고 강론하기도 하였다.
"주(周)나라 때 궁정(宮廷)에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어 놓고 삼공(三公)의 자리로 삼았는데, 후대에 내려오면서 이를 본받아 왕궁(王宮)에 이 나무를 많이 심어 궁괴(宮槐)라는 말이 나왔다." -《주례(周禮)》 추관(秋官) 조사(朝士)
친잠(親蠶)이란 조선시대 왕비가 직접 누에를 치고 고치를 거두던 일련의 의식으로 백성에게 양잠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이를 널리 장려하고자 성종 때는 후원의 잡목을 제거하고 뽕나무를 심도록 명했으며, 영조 때에는 친잠례를 기록한 『친잠의궤』에는 채상단 도면이 실려 있다.
"궁원(宮園)에 뽕나무를 심도록 명하였으니, 성주(成周)의 공상(公桑) 제도를 본뜬 것이었다." - 태종실록, 태종9년(3월1일)
중국 화북지방이 원산인 앵두나무는 꾀꼬리가 먹으며[鶯] 복숭아와 비슷한[桃]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세종과 성종은 앵두를 무척 좋아하였는데, 앵두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 문종은 후원에 앵두를 심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후원(後苑)에 손수 앵두[櫻桃]를 심어 매우 무성하였는데 익은 철을 기다려 올리니, 세종께서 반드시 이를 맛보고서 기뻐하시기를, "외간(外間)에서 올린 것이 어찌 세자(世子)의 손수 심은 것과 같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문종실록, 문종2년(5월14일)

별서정원에서의 식재는 유교 및 도교의 의미를 부여한 상징성, 사생활 보호 등의 기능성, 지역별 기후에 따른 생태적 특성에 의해 좌우된다. 본가지역과 별서지역을 차폐하는 기능으로서 다산초당, 소쇄원 등에서는 군식기법을 많이 사용하였다. 주변의 배경림으로서 송림이나 죽림 등의 군식을 정원의 한 요소로 많이 활용하였다. 주로 식재된 수종은 소나무[松], 느티나무[槐], 대나무[竹], 연꽃[蓮], 배롱나무[紫薇], 버드나무[柳] 등이며, 소나무, 대나무, 매화는 '세한삼우(歲寒三友)'라는 이름으로, 소나무, 대나무, 국화, 매화는 '사우(四友)'라는 이름으로 상징을 부여하였다.
옛 문헌에서는 벽오동과 참오동을 섞어서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다. 소쇄원의 경관에 대하여 노래한 「소쇄원 48영」 중 37영의 동대(桐臺)는 오동나무 아래 있는 대봉대인 소정(小亭)를 의미한 것으로, 보통 동(桐)은 참오동나무를, 오(梧)는 벽오동나무를 의미한다. 소쇄원도에 나오는 오동은 그 잎이 갈라진 모양새로 볼 때 벽오동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며, 현재 벽오동이 식재되어 있다. 벽오동은 비가 내릴 때 잎이 울리는 소리경관[雨景觀]을 위해 식재하기도 하였다.
37영 : 桐臺夏陰(오동나무 대에 드리운 여름 그늘)
38영 : 梧陰瀉瀑(벽오동 아래 쏟아지는 물살) -「소쇄원48영」, 김인후

주택에서는 신분 및 성에 의한 공간 분화, 기능에 따라 규모 및 행위 제한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공간별로 식재 식물을 살펴보면, 사랑채를 중심으로 한 공간에는 의미가 있는 매화, 국화, 난 등의 식물을 식재하였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별도의 사랑채인 별당을 조성하는 경우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둘째, 뒷마당은 장독대, 우물과 함께 앵두나무, 감나무 등의 과수를 식재하였고, 셋째, 바깥 공간을 중심으로 한 외정에는 소나무와 같은 수종을 심어 지표로 삼기도 하고 계류가에 버드나무를 심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바깥 공간을 채소밭, 약초밭 등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구례 운조루의 사랑채 앞마당에는 특이하게 위성류가 식재되어 있다. 「전라구례오미동가도」에서와 같이 측간 앞 차폐를 위하여 혹은 말을 매어놓기 위한 용도로 식재하였다. 수령이 100년은 훨씬 넘어보이는 위성류는 중국 사신(使臣)으로부터 받았다고 전해진다. 다산 정약용의 시문집에도 위성류가 언급되어 있다.
"'정(檉)'이라는 버드나무는 일명은 수사류(垂絲柳)라고도 하고 일명은 서하류(西河柳)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능수류(菱殊柳)라고도 하며 위성류(渭城柳)라고도 합니다. 푸르게 무성할 때에는 잎을 따서 사용하고, 가을이나 겨울 잎이 없을 때는 또한 가지나 줄기를 사용합니다. 당신의 집 대문 밖에 한 그루의 버드나무 가지가 백두옹(白頭翁)과 같이 축 늘어진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 다산시문집 제18권, 이판서에게 답함

서원은 제사를 지내고 유교이념을 가르치며 인재를 기르는 공간이므로 식재 수종들은 화려하거나 다채롭지 않아 주로 고목이 많이 남아있다. 주요 수종은 은행나무[杏], 느티나무[槐], 회화나무[槐], 측백나무[柏], 소나무[松], 향나무[香木], 대나무[竹] 등이 있고, 문묘 경역의 전면 좌우에 대칭으로 심는 것[對植]이 일반적이며, 이는 양과 음이 짝하여 하나가 된다는 화합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만물의 이치를 강독하는 향교, 서원 등 강학 공간에 널리 보이는 배식 형식이다.
이와 같이 각 전통정원이 조성되었던 당시의 식생 현황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옛 그림이나 문헌을 통해 간접적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전통 정원의 식생 경관은 자연 천이도 중요하지만 과거 식생 경관에 대한 조사와 분석, 의미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본 연구사업 결과, 전통정원 약 23개소의 전경, 고문헌 식재 비교 현황, 현재 배식도 및 건물 배치도, 식재 수종의 모습 등의 자료들을 화보집으로 출판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