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에 관심이 있거나 식물 관련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북반구의 오지 캄차카반도를 가보고 싶어할 것 이다. 캄차카 지역은 아시아대륙에서 북아메리카대륙으로 연결되는 지점에 북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하는 반도지역으로, 현재까지 대부분이 육로통행이 불가능한 오지이며 28개의 휴화산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이다. 캄차카 하면 해발 2,000m가 넘는 화산들을 생각하기 마련이나 북태평양의 거친 파도가 쉼 없이 몰아치는 검은 모래 해변도 장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관보다 식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해변 사구(砂丘)에 분포하는 식물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다. 우리나 라에서는 설악산 정상이나 백두산을 가야만 볼 수 있는 월귤, 시로미 등 북방계 식물들이 넓은 평지에 끝도 없이 자라는 장관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러시아 캄차카 사람들은 월귤 열매를 채취하여 차로 마시면 심장과 혈관계통에 효능이 있다며 즐겨 마신다고 한다. 실제로 월귤의 열매는 쥬스, 잼, 사탕, 술, 위장약 등으로 이용하며, 잎은 위장병, 방광염 등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월귤이 알츠하이머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보고도 있었다.
캄차카 지역에 잡목처럼 자라는 '월귤(Vaccinium vitis-idaea L.)' 은 위도가 높은 지방인 몽골, 중국 동북지역, 러시아, 북아메리카 캐나다 지역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도 백두산을 시작하여 백두대간 고산지역에 분포하고 있는데, 남한에서는 설악산 대청봉 주변과 홍천 방내리 지역에만 자라고 있다.
월귤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특별한 식물이다.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 빙하기에 북극지역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남쪽 으로 내려왔다가 1만 년 전부터 시작된 홀로세의 기온상승에 따라 다른 식물들과의 경쟁에 밀려 북쪽이나 고산지대로 밀려나 살아남은 유존군락으로 한반도 기후변화의 살아있는 화이다.
남한지역 월귤 자생지인 설악산 정상(해발 1,550-1,650m)과 홍천 방내리 지역(해발 350m)은 거리상으로도 떨어져 있으며, 수직적으로는 약 1,200m의 해발차이가 있다.
상식적으로 설악산 정상은 높은 해발로 인해 평균기온이 낮아 월귤이 자생할 수 있지만 홍천 방내리 지역의 경우 해발이 350m밖에 되지 않은 산림 내에 월귤이 자생하고 있어 매우 특이한 일이다.
그 원인은 '풍혈(風穴, wind hole)'에 있다.
풍혈은 얼음골, 빙혈 등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름철에 바위틈에서 차가운 공기가 나오거나 얼음이 어는 현상이 나타나는 지역이다. 경남 밀양 얼음골의 풍혈이 대표적인 장소이다.
한반도의 풍혈은 플라이스토세 빙기를 거쳐 홀로세에 이르면서 추운 기후를 좋아하는 식물들의 피난처(refugia) 역할을 하였고, 지금은 가속화되는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온난화에 견디기 힘든 북방계 식물들의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남한지역에 분포하는 풍혈지역에는 한들고사리, 두메고사리, 좀미역고사리, 월귤, 뚝지치, 참골담초, 산개나리, 자병취, 흰인가목, 꼬리까치밥나무 등 북방계 식물들이 자라고 있고 이들 식물 대부분은 우리나라 산림청 희귀식물(rare plants)로 지정되어 특별히 관리되고 있는 식물들이다.
2013년 국립수목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주요 풍혈지역 25개소에는 북방계 식물 24종, 희귀식물 19종, 특산식물 15종 등 총365종이 분포하며, 이들 풍혈지역은 산림생물다양성 유지 및 증진을 위한 산림 내 주요 유전자공급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가속화 되는 기후변화에 풍혈지역 식물 자생지 범위가 점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며, 더욱이 인위적으로 바람구멍(풍혈)을 막거나 휴게장소를 설치하여 풍혈 주위가 훼손되고 풍혈 주변에 자생하는 북방계 식물의 불법 채취로 인해 훼손인 심각해지고 있다. 실제로 홍천 방내리 풍혈지역에 자생하는 월귤은 외부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사진촬영, 불법채취 등 심한 몸살을 겪었으며 현재까지도 국립수목원과 홍천국유림관리소에서 설치한 펜스를 훼손하고 자생지 내에 불법으로 들어와 어렵게 살아가는 월귤을 못살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후변화가 점점 더 심화되고 사람들의 무관심과 훼손이 더 심해진다면 우리나라 남한에서는 더 이상 '월귤'이라는 식물은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월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자생지가 얼마 남지 않은 희귀식물에 대한 연구와 보전대책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강화되어야 우리 자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산이 없어지지 않고 고스란히 유지될 것이다.